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있었다면 박근혜 정권에서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은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두 사람 모두 관료 출신이다. 대선 캠프 시절 참모로 참여해 정권 교체 후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두 사람은 경제 관료로 성장하면서 거시정책을 직접 집행했거나 바로 옆에서 견학했다. 그 덕에 대부분의 경제 이슈에 대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그런 만큼 나름대로 결론도 갖고 있다. 경제정책에 어두운 대통령에게 요점을 요령 있게 설명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1997년 외환 위기는 그들에게 악연(惡緣)이었다. 강 전 장관은 당시 재정경제원(기획재정부 전신) 차관이었고, 최 부총리는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현재 무역협회 회장)의 보좌관이었다. 강 전 장관은 외환 파동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뒷전으로 밀려나 한동안 선술집에서 골뱅이 안주에 소주를 마시는 시절을 보내야 했다. 최 부총리도 모시던 상관이 외환 위기 책임 논란에 몰리면서 관료로서 출셋길이 암울해지자 "더 큰 눈으로 세상을 보겠다"며 경제신문 논설위원으로 궤도를 수정했다. IMF 책임론이 두 사람을 정계로 입문시키는 전기(轉機)였을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평한다.
강 전 장관이 자기주장을 금세 드러내는 강한 성격인 반면 최 부총리는 잘난 척하는 타입은 아니다. 둘 다 고환율 정책 지지자이다. 강 전 장관은 고환율 정책의 당위성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자주 내뱉는 바람에 2008년 달러 부족 사태를 몰고오는 비극을 빚었다. 그러나 최 부총리도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 잡음은 없다.
과거 예산 편성권을 갖고 거시 경제정책을 총지휘하던 경제기획원이라는 부서가 있었다. 지금의 기획재정부와 엇비슷한 파워를 가진 곳이었다. 공무원 시험에서 최상위 성적을 기록한 엘리트가 많았다. 그런 조직에서 최 부총리는 빛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학벌도 밀렸고 맡은 업무는 후배들보다 못한 경우가 잦았다. 독특한 개성(個性)을 노출하면서도 괜찮은 자리들을 거쳤던 강 전 장관과는 대비되는 이력서를 써야 했다.
대통령과의 관계도 달라 보인다. 강 전 장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동지거나 동업자라는 인상을 주곤 했다. 같은 교회에서 부부끼리 다짐한 신앙 서약 때문만은 아니다. 고도성장 시대 최대 건설회사 사장이라도 엘리트 관료 앞에서는 허리를 굽혀야 했다. 외환 거래 금액이 많으면 정부 승인을 받아야 했고 자금 조달, 세금 마찰 때도 공무원은 갑(甲)이었다. 강 전 장관이 이 전 대통령 아래서 일하면서 어떤 자세로 대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최 부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야 할 말을 터놓고 다 하는지 의문이다. 최측근이라고 해도 갑을 관계는 명확해 보인다. 펀드를 만들어 청년 일자리를 해결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내놓아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며 두 팔을 들어 반대할 처지는 못 된다.
강 전 장관은 정권 말까지 대통령과 쉽게 대화할 수 있는 거리에 머물렀다. 최 부총리도 당(黨)으로 돌아가 다른 역할을 맡더라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창구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대선 캠프 시절부터 대통령 임기 말까지 정책을 조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특별한 인물들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대선 1급 참모들은 대개 임기 도중에 밀려났다. 대통령들은 잘해야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 자리 한번 선물하고 그 뒤에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들 중 어떤 이는 권력 핵심에서 소외되면서 섭섭한 마음에 막걸리 한두 잔에 울었다. '대통령이 나에게 이럴 수는 없다'는 배신감에서 모시던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강 전 장관이나 최 부총리는 복(福)을 받았다. 바로 옆에서 최고 결정권자를 설득해 정책을 바꾸고 흐름을 돌려놓을 만했다. 제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의료·레저 같은 다른 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자며 밀어붙일 수 있었다. 세계 7대 무역 대국에 걸맞지 않은 금융산업도 얼마든지 효자 종목으로 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녹색성장' '창조경제' 같은 구호만 요란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대책 덕분에 취업한 사람 숫자가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을 것이라는 우스개도 들린다.
올해 성장은 2.5% 안팎이고 내년에도 2%대(臺)일 것이라고 한다. 2%대 성장이 운명처럼 굳어지고 있다. 강 전 장관은 경제 체질을 개조해 외환 위기 때의 쓰라린 패배를 역전시켜 보겠다는 야심을 펼쳐보지 못했다. 최 부총리도 그저 더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다음 타자에게 넘기고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새누리당 연속 집권이 낳은 최고 권력자들은 종종 경제의 큰 흐름을 놓치거나 정책을 헛짚는다. 그걸 알 만한 최측근들은 새로운 길을 가려는 의욕이 없다. 답답하고 슬픈 한국 경제의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