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우동 가게에서 9월 들어 처음으로 우동을 먹었다. 면을 몇 가닥 먹고 있는데 요리사가 오더니 면 상태를 묻는다. "좋네요!"라고 했는데도 선뜻 만족하지 못한 눈치다. 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점은 따로 있었다.
가을은 면이 점점 맛있어지는 계절이다. 한여름의 높은 온도와 습도는 면을 만드는 데 아주 고약한 환경이다. 반죽이 쉬 물러지기 때문이다. 여름에 반죽을 만들 때는 물의 양을 줄여 염도를 높인다. 숙성고의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날씨의 영향을 최대한 덜 받게 한다. 그럼에도 자연이라는 변수는 워낙 힘이 강해 통제하기 쉽지 않다. 한결같을 수 없는 일을 한결같아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 면 요리사들의 일이다. 반죽 상태가 나아진 것을 보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 요리사는 여름보다 면이 쫄깃한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본 음식이 유행하면서 일본식 우동 전문점이 늘고 있다. 흔히 일본식 우동이라고 하면 가가와현의 '사누키 우동'을 꼽는다. 사누키 우동은 굵은 면발, 부드러운 촉감, 강한 탄력이 특징이다. 손 반죽으로 우동 면을 만드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 먼저 소금물에 밀가루를 반죽해 2시간 정도 1차 숙성을 시킨다. 이를 손이나 발로 꾹꾹 눌러준 다음, 12~17시간 정도 2차 숙성을 한다. 표면이 부드럽고 씹을수록 탄력 있는 면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음식을 조용하게 먹기로 소문난 일본인들이지만 우동을 먹을 때만큼은 요란하다. 후루룩후루룩 빨아들이면서 입술로 면의 촉감을 느끼고, 이빨로 면의 탄력을 느낀다.
그런데 우동 소비량이 일본 전체 평균의 두 배를 넘기며 부동의 1위를 달리는 가가와현 토박이들이 우동을 먹는 방법은 조금 다르다. '노도고시'라고 해서 목 넘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후루룩후루룩 입술로 빨아들인 다음 씹지 않고 그대로 넘긴다. 이때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으로 탄력을 가늠한다. 이 때문에 부작용도 생긴다. 면을 씹지 않고 넘기니 포만감이 적어 많이 먹게 된다.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는 내장 비만의 원인이 되고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혈당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2013년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0만명당 평균 11명인 데 반해, 가가와현은 17.4명으로 47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2위이다. 당뇨병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 지역 사람들의 경우, 우동 먹는 방식도 발병 원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물론 이는 가가와현 사람들이나 걱정할 문제지 한국인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우동을 먹을 때 한국인과 일본인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 사람은 국물에, 일본 사람은 면에 중점을 둔다. 한국인은 면을 남기고 일본인은 국물을 남긴다. 한국인에게 면은 포만감을 얻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정작 관심은 개운한 국물에 있는 데 반해, 일본인에게 국물은 면을 적셔 먹는 용도에 그친다. 그래서 면 음식을 먹을 때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은 과도한 염분 섭취를, 면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과도한 탄수화물 섭취를 걱정한다.
일본식 우동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갓 뽑은 생면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일본식대로 무작정 탄력 넘치는 면을 좇을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는 우리 입맛에 적합한 면을 찾아나갈 때다. 앞서간 일본의 기술을 빌려와 취향에 맞는 면을 개발한다면, 현재의 유행이 분명히 의미 있는 과정으로 남을 것이다. 자고로 음식은 내 것을 지키고 남의 것을 조화롭게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