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숭숭' 벽돌 건물… 차가운 유리도시 녹이다

조선일보
  • 김미리 기자
    입력 2015.09.14 03:00 | 수정 2015.09.14 05:57

    [강북 '동네 건축가' 황두진, 강남에 15층 벽돌 빌딩 설계]

    벽돌 30만장 엇갈리게 쌓은 빌딩, 틈새로 빛 들어와 시원한 내부
    따뜻하며 수공예적인 느낌 살려… 2015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건축가 황두진씨 사진

    서울은 유리 마천루에 점령된 도시다. 뉴욕·런던·도쿄 같은 대도시에 견주어도 서울의 유리 건물 비중은 높은 편이다. 단열·외장재·내장재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데다 시공이 간편해 공사 기간이 짧다는 장점 때문에 한국의 '빨리빨리' 건축 문화가 유리를 편애한 결과다.

    최근 유리 남용에 자성이 일고 있다. 일부 지자체 청사를 비롯해 유리를 뒤집어쓴 건물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간미 없고 몰개성적인 도시 이미지의 주범으로 유리 건물이 늘 꼽히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최근 서울 강남대로에 들어선 15층 건물 '원앤원(won&won) 63.5'의 실험은 눈여겨볼 만하다. 건축가 황두진(52·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사진)이 설계한 이 건물은 갈색 벽돌 30여만 장을 손으로 일일이 쌓아 올려 만든 건물이다. 미끈한 유리투성이 강남대로에 묵직하고 투박한 벽돌이 들어왔다.

    황두진이 설계한 서울 강남대로의 15층 빌딩 ‘원앤원 63.5’(가운데 고층 건물 중 왼쪽). 강남에서 보기 드문 벽돌 건물이다. 벽돌을 엇갈리게 쌓아 외부의 공기와 빛이 건물 안으로 스며들게 했다.
    황두진이 설계한 서울 강남대로의 15층 빌딩 ‘원앤원 63.5’(가운데 고층 건물 중 왼쪽). 강남에서 보기 드문 벽돌 건물이다. 벽돌을 엇갈리게 쌓아 외부의 공기와 빛이 건물 안으로 스며들게 했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도쿄 롯폰기나 뉴욕 맨해튼에 가보면 의외로 벽돌 건물이 많더군요. 벽돌이 도시 풍경을 좀 따뜻하게 해준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우리 건물이 서울의 인상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하는 데 일조했으면 했어요." 건축주인 원정현 원앤원(부동산개발회사) 대표가 말했다. 그는 건물을 짓기로 하고 국내 유명 건축가 10여명을 찾아간 끝에 황두진에게 설계를 맡겼다. 황두진은 "유리 건물 더미에서 제 존재를 뚜렷이 하고 수공예적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재료를 찾았다"며 "사람이 손으로 나를 수 있는 크기로 만들어져 인간적이고, 빛 차단 효과도 있는 벽돌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황두진은 '내 건축적 고향은 강북'이라고 말하는 건축가다. 서촌에 있는 사무실을 기준으로 반경 1㎞ 안 북촌·서촌·광화문 일대에서 23개의 프로젝트를 해 '동네 건축가'로 불린다. '가회헌' '춘원당' '통의동 옛 열린책들 사옥' 등이 대표작이고, 대부분 한옥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다. '강북의 골목'에서 '강남의 대로'로 나와 새로운 도전을 한 건축가는 "창자처럼 오밀조밀 꼬여 제약 많은 강북에서 고군분투하며 설계한 경험이 강남에서 고층 건물을 짓는 데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원앤원 63.5’의 야경. 내부의 빛이 은은하게 새 나온다.
    ‘원앤원 63.5’의 야경. 내부의 빛이 은은하게 새 나온다. /건축사진가 김용관 제공

    한옥을 통해 쌓은 내공은 벽돌 벽의 디테일에 묻어난다. 이 건물을 자세히 보면 앞쪽 면에 구멍이 숭숭 나있다. 벽돌을 엇갈리게 쌓아 생긴 구멍이다. 건축가는 이를 '다공성(多孔性·구멍이 많은) 벽돌 벽'이라 부른다. 한옥 처마의 원리를 창조적으로 응용한 것이다. 벽돌이 빛을 차단하면서도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와 내부가 시원하면서도 밝다. 밤에는 건물의 내부 빛이 벽돌 틈으로 새나가 레이스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건축가는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 한옥 처마를 잘게 쪼개 수직으로 배열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15층 옥상 정원은 'ㄷ자' 한옥의 중정을 염두에 뒀다.

    벽돌을 비워 크기가 다른 커다란 창을 내기도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건물 풍경에서 사람이 지워져 버렸다"며 "이 건물에선 사람들이 발코니에 뚫린 벽돌 창으로 얼굴 내밀며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선 건물 속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와글와글하다가 이 건물 앞에선 조용해지는 느낌이라고들 해요. 상업 건축에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건물이 존재감을 알리는 또 다른 방식인 것 같습니다." 유리 건물 일색인 강남의 건축에 어퍼컷을 날린 이 건물은 최근 2015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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