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올 들어 중국의 기세가 거세다. 상반기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에 미·일을 제외한 유럽과 아·태 지역 주요국들을 대거 참여시켜 위상을 드높였다. 하반기에는 지난 3일 항일과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에서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통해 군사 대국 이미지까지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막강한 군사력을 선보인 중국의 속내는 무엇일까. 중국은 장차 어떤 길을 가려는 것인가.

사실 이번 열병식은 중국 지도부에 딜레마였다. 시진핑 정부는 '강한 중국'의 모습을 원하는 국내 정치적 요구와 '강한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했다. 시 주석이 연설에서 '30만 감군(減軍)'을 발표한 것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 이전부터 미국과의 현실적 힘의 격차를 인식하고 장기적인 외교·안보 전략의 재조정을 추진해 왔다.

그 계기는 2008년 말 미국 금융 위기였다. 당시 중국은 미국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보고 남·동중국해에서 미국이 세운 국제 질서에 도전해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았다. 이 도전에 대해 미국은 '재균형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했고,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인식한 일본·인도·호주·필리핀·베트남 등이 가세했다. 미국은 후진타오 정부 후반기인 2010년부터 중국이 제시한 '신형(新型) 대국 관계' 제안도 무시했다.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해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아시아 동맹 및 우방들과 중국을 견제할 군사·안보기제를 강화하는 한편 경제 면에서는 중국과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헤징(hedging)' 전략을 전개했다. 중국으로선 함부로 발톱을 드러냈다가 역습만 부른 꼴이 됐다.

시진핑 정부의 '신(新)도광양회' 전략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작년 12월 왕양 부총리는 제25회 미·중 통상무역합동위원회에서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존중한다"고 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올 8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 남중국해의 인공섬 매립 작업을 중단했다고 밝히고 역내에서 미국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했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이번 열병식은 중국의 '군사 굴기'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지만 당분간 발톱을 숨기며 미국을 뛰어넘을 때를 기다리는 데 더 무게감이 실려 있다. 시진핑 주석이 국제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제 우리도 스스로 방어할 만큼 강해졌으니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그렇다고 미국의 패권에 당장 도전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경제 경착륙 우려와 증시 침체, 청년 일자리 고민, 반(反)부패 개혁의 피로감 등 내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중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적 질서'를 구축하려면 먼저 일본과 북한에 대한 전략적 관리가 필수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이들과의 관계 개선을 물밑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중국 방문을 신중히 검토해왔다. 또 중국이 북핵과 통일 문제에서 한국 편에 서주리라는 시각은 지나치게 희망적 사고다. 중국은 한국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미·중 경쟁을 감안한다면 북한은 버릴 카드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방중을 통해 한·중 관계는 한층 심화됐고 외교적 수확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중국이 그리는 큰 그림을 읽고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일 정상회담을 냉철하게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