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수자원공사에 부탁해 얻어놨던 자료가 있다. 올 들어 7월 20일까지 가뭄 현황과 피해 상황이다. 그때까지의 전국 누적 강수량은 496.9㎜로 평년의 72.5% 수준이었다. 특히 강원도 영동·영서 지방은 제대로 된 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후 43개년 중에서 역대 1위·2위에 해당할 만큼 혹독한 가뭄을 겪었다. 서울·경기는 역대 3위, 충북·충남은 3위·4위, 경북·전북은 6위·7위였다. 전남·경남만 평년 수준이었다. 지난해도 가뭄이 심했다. 서울·경기는 역대 1위, 강원 영서는 1위, 충북·충남은 2위·3위였다. 댐은 6월 말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물을 비워놨다가 9월 말 홍수기가 끝날 무렵 다음 해 봄을 대비해 물을 채워놓는다. 작년~올해 연속 가뭄은 이런 댐 관리를 어렵게 했다. 소양강댐·충주댐의 ‘전년 1월~당해년 7월 말 누적 물 유입량’은 43개년 중 최소(最少)였다. 올봄 여러 언론이 이런 사정을 자세히 보도했다. 소양강댐과 충주댐 수위(水位)가 위태로운 수준까지 떨어진 것을 연일 중계했다. 상당수 언론은 가뭄 피해를 4대강 사업과 연결지어 다뤘다. ‘22조원을 들인 4대강 사업이 가뭄에 무용지물’이라는 관점이 많았다. 강원도와 경기 북부 등 가뭄이 특히 심한 지역은 4대강 유역이 아니어서 4대강 물을 활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가뭄에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지역들에 4대강 물을 보내는 송수관로와 양수설비를 보강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1조원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4대강 사업이 아직도 안 끝났느냐’며 비꼬는 시각들이 있었다. 어느 국회의원은 “이제 와 4대강 수자원 활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가뭄 해소에 도움도 못 되는) 잘못된 사업을 (가뭄 해소에 도움 되게 만들어) 정당화하기 위한 예산 낭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수자원공사 자료를 보면 가뭄 피해 양상은 언론 보도와 아주 달랐다. 올해처럼 가뭄이 심했던 1994년 농경지 피해 면적이 18만9000㏊였는데 올 들어 6월 말까지는 7300㏊ 정도였다. 7월 이후 새로운 가뭄 피해가 크게 늘어나진 않았다고 한다. 같은 가뭄이라도 강우의 지역 분포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1994년과 2015년 피해를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그렇더라도 올해는 ‘역대 최강(最强)’ 수준 가뭄이었는데 피해는 아주 적었다는 점은 거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4대강 사업이 역할을 했을 거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이 4대강 사업을 정당화하는 충분한 이유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임(前任) 대통령이 4대강을 임기 내에 개조하겠다고 밀어붙인 것은 과욕(過慾)이었고 절차상 편법, 우격다짐이 많았다. 개인 업적보다 국가 장래를 길게 내다보고 급한 곳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했더라면 부작용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의 상당 부분은 공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더라도 효과를 본 부분은 그것대로 평가할 수 있어야 그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진다. 우리 지식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진영(陣營) 논리’가 ‘과학 논리’를 삼켜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4대강에 대해 무슨 입장인지 알면 그가 원자력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광우병이나 케이블카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지 거의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유리해지나’라는 이해(利害)를 따져 진영의 논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판기식(式) 논리로는 현상 전체가 눈에 들어올 수 없고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방향과 각도에서만 보는 ‘선택적 취사(取捨)’의 왜곡에 빠지게 된다. 나도 간혹 이런 오류에 빠지고 있진 않은지,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입력 2015.09.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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