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초점] 개발도상국 경제에 부는 逆風

입력 2015.09.02 03:00

국제무역·원자재 수출 침체가 한국 제조업·수출 부진 초래해
가계부채 탓 內需 부양도 한계… 수출 위주 탈피 혁신 치중하고
규제·금융·서비스산업 개혁해 市場 인프라를 한 단계 높여야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사진
권구훈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개발도상국의 경제에 역풍(逆風)이 불고 있다. 석유, 철광석 및 석탄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주로 원자재를 수출해서 먹고사는 개도국에 큰 악재이다. 선진국 경제는 미국의 약진으로 회복기에 들어섰지만 세계 무역 증가량은 아주 미약하다. 더구나 올해 들어서는 중국의 성장 둔화로 국제무역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러한 국제무역 침체는 경제성장과 국제무역의 관계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성장이 무역을 견인하는 무역승수(乘數)가 금융위기 전에는 2 내지 3배였는데 지금은 거의 1배 이하로 떨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국제무역의 침체는 단기적인 경기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구조적 요인으로는 중국이 성장동력을 투자에서 소비로 전환하고 있는 점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부활하는 현상 등이 있을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축적된 광공업 생산 능력에 비해 광공업 수요는 따라가지 못해 개도국에서는 과잉 생산, 재고 누적, 가동률 저하 등의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2001년 말 중국이 국제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시작된 개도국 순풍(順風)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유가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개도국 역풍 사이클이 시작되었음을 시사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해외의 물가 상승 압력이 둔화되는 것이지만, 불리한 점은 원자재 가격 하락과 개도국 통화 약세가 맞물려 개도국의 수입 수요 감소와 원자재 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선진국 문턱에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개도국에서 불어오는 역풍의 영향권에 있다. 한국은 원자재 수입국이어서 원자재 생산 개도국과 차별화가 되지만 수출시장 측면에서는 개도국이 60~70%를 차지할 정도로 개도국 경기침체에 노출이 큰 편이다. 이를 반영하듯 한국의 제조업 가동률은 올해 들어 73%대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불황이나 아시아 금융위기 없이 이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1980년대 이후로는 처음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대만도 마찬가지이고, 일본은 엔저 덕분에 좀 나은 편이었지만 중국의 수요 감소로 최근 다시 악화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9월 수출 실적이 작년 대비 14.7% 감소했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이다. 내수 부양책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단기적 내수 침체에는 효과적이지만 해외 수요의 추세적 침체 경우에는 구조조정과 결부되지 않으면 약발이 떨어진다. 또한 한국은 고령화와 가계부채 등으로 금융 안정성과 재정 건전성도 고려해야 하므로 대규모 내수 부양은 한계가 있다. 그나마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이 곧 발효된다면 대중(對中) 수출에는 다소 도움이 될 테니 다행이다.

이런 세계경제 환경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경우 상대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라는 점에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과 위험 회피 심리에 영향을 덜 받는 장점이 있다. 선진화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저가의 공산품 수출을 통한 성장 전략과 개도국 시대의 유산인 촘촘한 시장규제에서 한국이 졸업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시장인 개도국의 경제가 둔화되는 이런 때일수록 한국은 혁신과 생산성에 바탕을 둔 창조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과잉생산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서비스산업의 개혁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금융도 선진화에 박차를 가해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국 지수에 가급적 빨리 편입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한국 기업의 수익성과 지배구조의 목표치를 선진국 기준으로 전환하고, 주식시장 관련 제도를 정비하며, 외환거래를 포함한 시장 인프라를 한 단계 높이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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