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 김해캠퍼스 무역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인두닐(34)씨는 스리랑카 출신 유학생이다. 인두닐씨는 수업이 끝나면 김해 동상동 '외국인 거리'에 있는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12평(39.6㎡)짜리 옷가게에서 인두닐씨가 옷 정리를 하며 버는 돈은 한 달에 45만~50만원. 이 돈으로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한다.

년 전 스리랑카에서 한국으로 와 옷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인두닐씨와 옷가게 주인 강경희씨는 서로를‘엄마’와‘가족’으로 부른다

7년 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온 그는 "공부가 하고 싶어서 5년간 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며 학비를 모아 대학에 입학했다"며 "사실 옷가게에 아르바이트생이 필요 없지만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위해 일부러 일자리를 마련해줬다"고 했다. 옷가게 주인 강경희(49)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식당에서 일한다는 말을 듣고, 공부할 시간을 줄 테니 우리 가게에서 일하라고 권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인두닐씨가 청바지를 사기 위해 7년 전 이 가게에 들르면서 인연을 맺었다. 강씨는 "처음엔 한국말을 전혀 못하고 손가락에는 기름때가 가득한 청년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돈 3만원을 꺼내 옷을 사는 게 안쓰러웠다"고 했다. 인두닐씨는 그 뒤로 가게 단골이 됐고 강씨는 가족 생일 때 빠짐없이 인두닐씨를 불렀다. 강씨는 "인두닐은 우리 가족"이라고 했고 인두닐씨는 "아주머니는 우리 엄마 같은 분"이라고 했다.

경남 김해는 경기도 안산·시흥·포천·화성 등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한국의 대표적 경공업 도시다. 김해에는 1990년대 경공업 공장들이 대거 들어서면서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2013년 기준 김해에는 8000여 개의 중소 제조업체가 있다. 그중 73%는 종업원 10인 이하 영세 제조업체다. 이 업체들이 주로 임금이 싼 동남아 출신 근로자를 채용하면서 김해시 주민 52만7240명 중 외국인(2만3042명) 비율은 지난해 4.4%(전국 평균 3.4%)까지 올랐다. 전국 77개 시(市) 단위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16번째로 외국인 주민 비율이 높다.

외국인 근로자가 모이면서 한때 침체했던 동상동 전통시장 거리는 '경남의 이태원'으로 불릴 정도로 활기를 띠고 있다.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는 외국인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외국인 거리가 만들어졌다. 주말에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공단 지역을 거쳐 이곳을 지나는 김해시 '14번' 버스는 승객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외국 버스'로 불린다.

이곳에는 한국어 간판을 단 삼겹살집, 돼지국밥집 사이에 태국·베트남·모로코 음식점이 들어섰다. 또 베트남 현지 생숙주 생콩나물이나 동남아식 밑반찬, 향신료 재료와 그린파파야·두리안 같은 열대 과일도 판다. 동남아 출신 무슬림들을 위한 할랄 식당도 들어섰고 이슬람 예배소도 있다.

경남 김해시 동상동 외국인거리에서 스리랑카에서 건너온 외국인들과 인근 한국상인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말에는 김해뿐 아니라 전국에서 동남아 출신 근로자 3000여 명이 이 거리로 몰려들면서 동상동 거리에는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거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점이 110여 개 들어섰다. 이곳 노래방에는 베트남·필리핀 등 국가별 언어로 된 노래 목록이 따로 비치돼 있다. 김해시청 관계자는 "김해공항에 베트남 직항 노선이 있어 김해에서 동남아산 채소와 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동남아 출신들을 김해로 불러모으고 있다"며 "김해는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한국에 정착하는 '관문(關門)'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했다.

경기도 안산 등에서는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면서 이 지역 한국인들 사이에선 외국인 근로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게 퍼져 있다. 또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들에 대한 차별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안산의 원곡본동에는 외국인 근로자들만 모여 사는 '게토'(소수 집단이 밀집해서 거주하는 지역)가 생겨났다.

반면 김해 주민들 사이에선 동남아 출신 외국인에 대한 '포비아(공포증)'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상동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선금(86)씨는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달라도 같은 마을에 살면 같은 식구 아인교(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김해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최모(53)씨는 "김해에선 제조 인력의 상당 부분을 동남아 출신이 맡으면서 예전처럼 외국인을 차별해선 공장을 아예 운영할 수 없다"며 "김해에선 한국 사람은 '선(先)주민', 외국인은 '이주민'일 뿐"이라고 했다.

김해 외국인 범죄, 다른 곳의 절반… 명예경찰대 만들어 자체 순찰활동

한국 사회가 동남아 외국인 밀집 지역에 대해 갖는 편견 중 하나는 '범죄 우발 지역'이란 것이다. 하지만 경남 김해시 외국인 범죄 발생률은 다른 외국인 밀집 지역보다 훨씬 낮다. 동남아인이 많이 모여 사는 경기 안산시는 2013년 기준 외국인 범죄가 연간 1300여 건, 중국인·조선족 중심지인 서울 영등포·구로구에서는 각각 800여 건 발생한다. 반면 김해시의 외국인 범죄 발생 건수는 370여 건 정도다. 김해 거주 외국인 가운데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의 비율은 1.8%(2014년 기준)로, 김해 거주 내국인 중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비율(2.8%)보다 1%포인트 낮다.

지난 6월 20일 김해 외국인 방범순찰대가 거리에서 외국인들에게 방범 팜플렛을 나눠주고 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김해 시민들이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지 않는 지역 분위기와 외국인들이 스스로 '문제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결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베트남·네팔·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출신 외국인들은 2009년부터 김해 중부경찰서와 함께 외국인 명예경찰대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20~30명 규모로 구성된 명예경찰대는 외국인이 가장 많이 모이는 매주 토요일 동상동 치안센터 앞에 모인다. 이들은 형광색 순찰복을 입고 동상동 일대를 순찰하고 전단도 나눠준다. 전단에는 '총기와 칼을 휴대하지 말 것, 술을 많이 먹고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 싸우지 말 것, 거리를 더럽히지 말 것' 등의 내용이 영어·중국어·베트남어·우즈베키스탄어 등으로 적혀 있다.

명예경찰대원인 네팔 출신 디팍(25)씨는 "한국인들이 범죄 예방 활동을 하면 외국인들이 반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같은 외국인이 방범 활동을 하니까 웃으며 전단을 받는다"라며 "한국 사회에 조화롭게 스며들기 위해 외국인도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