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힐 전 주한 미국 대사가 28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현재의 한반도 정세에 국한해서만 대화를 해선 안 된다. 한반도 통일과 그 이후의 상황까지 대화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중국과 국경선을 맞댄 당사자가 북한에서 통일 한국으로 바뀌면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여러 변수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주한 미국 대사와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28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다음 달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기간 중 한·중은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통일 한국이 출범하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주최 월드 서밋 2015 행사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힐 전 차관보는 "중국은 지금도 한국의 훌륭한 경제·정치적 파트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상대 국가를 한 차례씩 방문하는 동안 북·중 정상 간의 만남이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한·중 관계의 긴밀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통일된 한국이 중국과 접경 국가가 되는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 뒤에도 양국 관계가 지금처럼 순조롭게 흘러간다는 보장을 하기 어렵다. 두 정상은 이런 '불투명한 미래'까지 상정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미국의 국제 문제 전문 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문에서도 '지금 북한 김정은 정권의 최악의 리더십을 감안하면 이 문제가 한·중 정상회담 의제가 돼야 한다'고 썼다.

"통일 뒤 북·중 국경선이 그대로 승계되지 않고 통일 한국과 중국 간 국경 분쟁 등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이냐"고 묻자 힐 전 차관보는 "지리적 국경선이 변동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지만, 정세 급변에 따른 모든 불확실성에 대비해 선제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 정상 중 박근혜 대통령만 유일하게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 정가에도 이번 방문과 열병식 참석을 한반도 정세 안정을 위한 방편으로 지지하는 흐름이 있다"고 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에 부심하는 한국이 상호 견제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자세를 취할지 늘 고민하고 이런 상황을 자조하는 흐름이 있다"는 말에 그는 "한국과 미·중의 관계를 마치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자조할 필요가 없다. 동등한 동맹의 입장에서 무엇을 할지 결정하고 실행하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 25일 남북 간 고위급 협상 타결에 대해 "김정은 입장에서는 확성기 대북 방송을 중지한 것에 감지덕지하고, 얻어낸 게 없으니 북한이 진 것"이라고 했다. 앞서 기고문에서도 그는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에 비해 정통성을 거의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김정일이 생전 집권 시절 김일성의 권위를 확보하려 발버둥쳤던 것처럼 김정은도 선대 지도자들의 위엄을 확보하려 애쓰지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당분간 한·중 관계가 북·중 관계를 앞서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두 나라 중 한 나라가 침공받을 경우 자동 군사 개입하도록 한 54년 역사의 북·중 우호 조약(조·중 우호 협력 상호 원조 조약)이 향후 통일 작업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선 "지금 중국이 과연 그 조약에 관심이나 있겠느냐"며 사문화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