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배려의 쓸모

조선일보
  • 정상준 그책 대표
    입력 2015.08.27 03:00

    정상준 그책 대표
    정상준 그책 대표
    작년 봄, 서교동으로 이사 가기 위해 광화문 오피스텔에서 짐을 꾸리는데 연세 지긋한 경비원 어르신이 서운하다며 내 손을 잡았다. 24시간 교대인 업무 특성상 평소 고단한 기색이 역력하던 분이었다. "탁자 위에 음료수를 올려놓고 가는 입주자들이야 간혹 있지. 하지만 편하게 드시라고 음료수 뚜껑을 따서 밤마다 놓고 가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었다오."

    뜻밖의 칭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인간적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일삼는 사람도 있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그 이상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다. 지금도 그 어르신 말씀을 생각하면 민망할 따름이지만, 무심결에 행한 작은 배려가 그분에게는 작지 않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따금 나태하고 방만해지는 내 정신을 일깨우는 각성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광화문 시절 직원들에게 가까운 미술관 체험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보게 했다. 물론 평일이었다. 혼잡한 주말 대신 평일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에디터십(편집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나 정신)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지만, 이를 위해 주 4일제를 도입한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배려였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이에 따라서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 시간에 밀린 잠을 보충하는 이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문화 강좌를 소화하면서 멋지고 유연한 편집자로 거듭난 이도 있었던 걸 보면 배려의 쓸모는 고스란히 수용자의 몫이었다.

    [일사일언] 배려의 쓸모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배려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ECM 앨범이 있다. 랄프 타우너, 볼프강 무스피엘, 슬라바 그리고리안 이렇게 기타의 세 명인이 자신의 소리를 강요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마치 한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듯 귓가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서로에 대한 마음씀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는 아름다운 체험이었다. 고통과 슬픔을 달관한 자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영혼의 멜로디. 가끔 그 음반을 들으며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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