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50] 재미의 독재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8.27 03:00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북한의 끝없는 위협, 비합리적 문화, 평범한 이에게는 취업·결혼·집 장만이 불가능해 보이는 나라. 대한민국은 많은 문제를 가진 사회다.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적어도 우리만의 장점 하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바로 '재미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북유럽 대부분 도시는 저녁 6시만 되면 유령도시가 되지만, 우리는 '불타는' 월화수목금토일을 자랑한다. 어두워지면 치안이 걱정인 미국 대도시들과 달리 밤 10, 11시에 초등학생도 혼자 거리를 누비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뿐일까? 해외에서 오래 산 이들에겐 종일 한국 TV 프로그램만 봐도 재미있다. 막장 드라마는 기본이고 귀여운 아이들, 진흙탕에서 미끄러지는 코미디언들, 시시콜콜한 연예계 사생활들, 먹고 마시고 춤추는 셰프들,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들, 이 모든 장면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자막들. 정말 중독성 있다.

    재미있는 것은 중요하다. 재미없는 방송, 과학, 신문, 인생을 누가 원하겠는가? 문제는 '재미의 의미'다. 포도당을 필요로 하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단것을 맛있어 한다. 아이가 설탕물과 초콜릿을 원하는 이유다. 하지만 매일 하루 세 끼를 평생 설탕물과 초콜릿만 먹는다면? 비만과 당뇨는 당연하고, 아이 인생 그 자체가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경험 없이는 맛있어 할 수도, 즐길 수도 없는 것들이 많다. 잘 익은 김치, 신선한 회, 처음 경험했을 땐 쓰기만 하던 커피와 와인….

    지적인 재미도 비슷하다. 경험도, 생각도, 이해도 없이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 문화의 현실이다. 아니, 재미있기 위해선 생각도 하고 노력도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원주민도 바나나에 미끄러지는 사람을 보면 재미있어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 스마트폰을 팔고 문화 강국이 되려는 21세기 대한민국은 이제 서서히 설탕물만 인정하는 '재미의 독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만 의미 있는 사회와 의미 있는 것이 재미있어지는 나라.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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