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고위급 회담 장면 CCTV로 중계돼… 남북 頂上이 실시간 지켜보고 있어"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5.08.24 03:00

    [남북 회담의 幕後…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

    회담장서 상부 재가 없이 사소한 합의도 할 수 없어
    남북한 합의문 만들어도 서로 해석 다르고 이중적

    生母 고영희와 친한 김양건妻, 김정은이 '이모'로 불러… 이런 관계로 김양건을 중용
    한때 北대표 원동연은 숙청

    유성옥(58)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원장은 국정원의 대북 정보 분석 파트에서 26년간 일했다. 400여차례 남북한 당국자 회담에 직·간접으로 관여했고, 8차례 방북했다.

    국정원의 사전 동의를 얻어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날 상황이 바뀌었다. 판문점에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 북한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비서 간에 고위급 접촉이 이뤄졌다. 최종 협상 결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일요일 다시 인터뷰를 했다.

    유성옥 원장은“남북 상황이 꼬일수록 당국 간에 막후(幕後)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성옥 원장은“남북 상황이 꼬일수록 당국 간에 막후(幕後)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과거에 '무박(無泊) 3일' 협상을 벌인 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제2차 장성급 군사회담 때다. 서해안의 우발적 군사 충돌, 군사분계선의 선전활동 중지가 의제였다. 그때 '대북 심리전 중단' 합의를 했다. 48시간 동안 잠 안 자고 협상했던 그 문제가 11년 만에 다시 제기된 셈이다."

    ―그때 직접 참여했나?

    "국정원 본부에서 회담을 컨트롤했다. 그러느라 나도 사흘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컨트롤한다는 것은?

    "회담장에 앉은 남북 대표들은 '재량권(협상권)'을 갖고 있지 않다. 평양이나 서울에서 훈령(지침)을 받고 온다. 사소한 합의라도 상부 재가(裁可) 없이는 할 수 없다. 회담 장면은 CCTV로 중계된다. 이를 모니터하면서 그때그때 어떻게 하라고 지침을 주는 것이다."

    ―협상 대표가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지침을 받는가?

    "회담장 주변에는 요원들이 다 있다. 비공개 회담이라도 문을 열어 쪽지를 전해준다. 사안이 크면 정회(停會)를 요구한다. 회담 대표가 바깥으로 나와 비화기(祕話機)로 직접 통화한다. 아주 민감하면 약속된 음어(陰語)를 쓴다. 가령 '웃동네 아이들이 장사를 하는데 가격을 너무 올려달라서 물건 사기가 어렵다'는 식이다. 그렇게 본부의 지시를 받아서 다시 회담장에 들어간다. 남북한 협상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번 고위급 접촉도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모두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뜻인데?

    "물론이다. 비공개 접촉이지만 청와대·국정원·통일부의 담당팀에서, 그리고 북한에서는 김정은과 당총정치국·통일전선부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런 경우 협상 대표는 미리 정해놓은 입장과는 다른 발언을 할 수가 없다. 사실 남북 상황이 꼬일수록 당국 간에 막후(幕後)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

    ―막후 채널이라면?

    "오직 남북한 최고 지도자에게만 보고되기 때문에 당사자들끼리 상당히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다. 공개적으로는 서로 명분을 내세워 강한 주장을 하지만, 막후 채널을 통해서는 실리를 위주로 타협점을 찾기 쉽다. 나도 5년간 북한과 막후 접촉을 했다. 그 자리에서 북측 대표가 '솔직히 우리가 힘들다. 살려달라'는 말도 했다."

    ―올 초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대통령의 시간)에서 2009년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사전 비밀 접촉 당시 북측 대표가 '(경제 지원 약속을 받지 못하고) 그대로 가면 죽는다'고 말한 걸 공개했다. 그 뒤 북측 대표였던 원동연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이 숙청됐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지난 이희호 여사 방북 때도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숙청된 것 같다."

    ―당시 비밀 접촉 때 지금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있었다. 그는 왜 숙청되지 않았나?

    "김양건 부인이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와 친하게 지냈다. 김정은이 김양건 부인을 '이모'라고 부른다. 김정은 정권에서 이런 특수 관계로 김양건에게 힘이 실려있다. 이번에 김관진 안보실장이 협상 상대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지목했는데, 북한에서 김양건을 포함해 '2+2 접촉'을 다시 제안했다. 황병서는 회담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김양건은 대남 전략과 협상에서 뛰어나다."

    ―이번 회담장에는 협상 대표 4명 말고는 다른 배석자는 없나?

    "화면상 나오지 않지만 뒤에 녹취하고 기록하는 인원이 각 한 명씩 있다."

    ―협상 결과는 발표되지만, 이틀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회담장 풍경을 대략 묘사할 수 있나?

    "우리가 '명백한 도발'이라고 말하면, 북한에서는 '영상 자료가 있느냐. 증거를 내놓아라'고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루한 공방이 계속된다. 어느 쪽도 양보할 수가 없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서는 처형될 수 있다."

    ―쌍방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면 타협이 될 수가 있나?

    "정전협정 이후에 대남 도발이 400~500차례 있었지만, 북한이 유일하게 인정한 것은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뿐이었다. 1972년 이후락 중정부장이 평양에 올라가 김일성을 만나자 '그건 좌경 망동 분자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KAL858기 폭파 사건(1987년)이나 천안함 폭침 사건을 북한은 모두 조작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번 목함지뢰나 포격 도발을 결코 인정할 리가 없다."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의 시인(是認)과 사과는 없다는 건가?

    "그렇다. 이런 경우 과거에는 '남북은 최근 불미스러운 군사적 충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상호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며 포괄적 합의를 해왔다. 유감 표명을 우리는 '북한이 사과했다'로, 북한은 '남조선이 조작한 걸 시인했다'로 해석해왔다. 남북한 합의를 해도 서로 해석이 다르고 이중적이다."

    ―이 인터뷰 동안 협상이 진행 중이니, 과연 합의문이 그렇게 나올지 퀴즈를 맞히는 기분이다.

    "남북한 최초의 합의인 '7·4 남북공동성명'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 3대 정신으로 나온다. 이는 그 뒤 정권의 남북한 공동선언에도 다 들어간다. 하지만 북한은 자주를 '주한미군 철수', 평화를 '한미군사협동훈련 폐지', 민족대단결을 '미제(美帝)'를 배격하고 '우리민족끼리'로 해석해왔다."

    평양 백화원 초대소 앞에서.
    평양 백화원 초대소 앞에서.
    ―이번 포격 도발 사태에서 남북은 치킨게임처럼 강(强) 대 강으로 맞붙었다. 그러다가 북한이 최후 통첩 하루 만에 대화를 먼저 제의했는데?

    "김정은이 강하게 지시를 하고서 꽁무니를 뺀 것처럼 됐다. 국제사회가 주목한 가운데 그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 그는 전쟁 공포심을 조장해 우리 내부에서 정부를 압박하도록 하는 '이남제남(以南制南) 전략'을 구사하려고 했다. 이번에는 먹혀들지 않았다. 지금 진행 중인 한미군사훈련(을지프리덤가디언)이나 중국의 압박도 부담이 됐을 것이다."

    ―명분과 체면을 내세우는 집단인데, 북한이 달리는 자동차의 핸들을 그렇게 쉽게 꺾은 것은 예상 밖이었다.

    "우리가 5·24조치(천안함 폭침에 따른 대북 제재) 해제를 논의하자는 제안에도 북한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먼저 대화를 제의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최고 존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협상을 해서라도 이를 막는 것이 그 어떤 가치나 정책보다 우선인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그렇게 북한에 치명적인가?

    "전방에서 근무하는 대다수 북한 군인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출생했거나 성장한 '장마당 세대'로서 외부 사조에 극도로 취약하다. 북한 외무성 성명에도 '단순한 대응이나 보복이 아니라 제도를 목숨으로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북한의 체제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큰소리치던 김정은의 체면이 구겨진 것인데, 내부 장악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북한에서 먼저 대화를 제의했다고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또 협상에서 백기(白旗)를 들면 몰라도 앞서 말한 '남북한 상호 유감'이라는 식으로 타결된다면 북한에서는 '남조선이 조작을 인정했다'고 선전할 것이다."

    ―김정은이 전쟁 상황까지 몰고갈 수도 있었다고 보나?

    "김정은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을지는 모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끌 능력은 없다. 이런 한계를 그도 잘 알 것이다. 또 남북 관계는 지정학적으로 주변 국가의 안보적 이해와 맞물려있다. 이 때문에 위기 국면이 쉽게 폭발하기 힘든 구조다.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폭격이 검토되는 등 극단으로 치닫다가 카터의 방북으로 해결 국면에 돌아섰던 사례도 있다."

    ―북한에서 중요한 결정은 전적으로 김정은이 내리고 있다고 보나?

    "유일 지배 체제의 특성상 김정은이 최종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초 김정은을 '애송이로' 봤다. 우리 정보부가 잘못 판단했던 게 아닌가?

    "김정은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일 것이며, 통치 경험이 없어 주변 실세들에게 휘둘리고, 유학 경험이 있어 선대에 비해 개방적일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하지만 그는 더 폭력적이고 더 교묘한 방법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집권 4년 만에 김정은이 권력 기반을 완전히 굳혔다고 봐야 하나?

    "공포통치를 통해 겉으로는 체제 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된 불만과 억압된 모순들이 체제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불안정이 잠복돼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2인자는 누구라고 보는가?

    "북한은 오로지 1인에 의해서만 통치되는 체제다. 2인자의 존재는 김정은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 세력이라고 의심될 경우 장성택처럼 가차 없이 처형될 수 있다. 2인자의 자리로 가는 것을 매우 꺼리는 분위기다. 굳이 2인자를 지목한다면 백두 혈통인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으로 생각한다."

    ―현 정권 들어와서 대북 접촉 창구는 끊겼다. 이번 고위급 접촉이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은가?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회담하려면 전통문을 주고받고 예비회담을 하고, 수행원이 누구인지를 따지고, 절차가 복잡했다. 이번에는 최고 실세들이 바로 판문점에서 만났다. 실용적인 회담이다. 또 판문점에서는 도·감청 우려가 전혀 없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하는 것은 서로 도청을 하기에 겉은 화려하지만 내용은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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