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한명숙의 거짓말

입력 2015.08.22 03:00

최원규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최원규 디지털뉴스본부 차장
불법 정치자금 9억원 수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판결에 한명숙 전 총리가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고 하는 걸 보면서 어쩌면 그가 '나는 깨끗하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한 돈은 한 푼도 안 받았다는 그의 주장과 다른 팩트(사실)가 많기 때문이다.

그는 '5만달러 뇌물 사건' 첫 재판이 열린 2010년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가 총리로 있던 2006년 공기업 인사 청탁 명목으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았다고 검찰이 기소한 사건이다. 그는 "삶과 양심을 돈과 바꿀 만큼 세상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다. 남의 눈 피해 돈 받아 챙기는 일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사건은 무죄가 확정됐다. 곽 전 사장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한 전 총리 말은 사실인 것처럼 비쳤다. 검찰이 이어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사건'을 수사했지만, 민주화 투쟁 경력을 앞세운 그의 청렴 이미지를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말 그의 말은 진실일까.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하고 취재했던 나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5만달러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팩트만 봐도 그렇다. 곽 전 사장은 "2009년 한 전 총리에게 1000만원(100만원권 수표 10장)을 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5만달러와 별개의 돈이다. 곽 전 사장이 인출한 이 수표 중 3장이 한 전 총리 남동생 통장에 입금됐다. 검찰은 이 부분을 본안과 관련이 없다고 해서 따로 기소하지 않고 재판에서만 공개했다.

곽 전 사장은 또 "한 전 총리가 여성부 장관 시절이던 2002년 8월 함께 골프용품점에 가 일제(日製) 혼마 골프채 등 골프용품을 사줬다"고 증언했다. 그는 수표로 998만원을 결제했다. 한 전 총리 변호인은 "한 전 총리가 골프 모자만 들고 나왔다"고 했지만, 당시 매장 전산 자료엔 구매자가 '한명숙'으로 적혀 있었다. 이쯤 되면 누구 말이 거짓인지 뻔한 것 아닌가?

한 전 총리가 2008년과 2009년 곽 전 사장 소유의 제주도 골프빌리지를 26일간 무상으로 사용했고, 한 전 총리 일행이 친 골프 비용을 곽 전 사장이 대납해 준 사실도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한 전 총리 측은 "골프는 치지 않았다"고 했지만 당시 골프장 캐디는 "한 전 총리가 90타에서 100타 사이를 친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한 전 총리는 곽 전 사장에 대해 "기업을 잘 운영하는 기업인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2006년 12월 20일 총리 공관에서 곽 전 사장과 점심을 했고, 불법 정치자금 9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건설업자 한만호씨와 저녁을 했다. 곽 전 사장이 5만달러를 건넸다고 한 바로 그날이다.

한 전 총리는 검찰에서 성경책을 손에 들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재판 과정에선 '양심'을 들먹였고, 무죄가 선고됐을 때는 '청렴'을 상징하는 백합을 들고 기자들 앞에 섰다. 그 양심은 대체 어떤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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