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 전 미국 버지니아주 남쪽 섬에 영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마을을 만들었다. 그들은 제임스타운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당시 영국의 지배자가 제임스왕(王)이었다. 영국인들을 이곳으로 이끈 것은 대박의 꿈이었다.
스페인이 중남미 금광, 은광(銀鑛)에서 노다지를 캐던 시대였다. 후발 주자 영국은 버지니아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북미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제임스타운에서 처음 만난 것은 엄청난 모기떼였다. 그들은 소금기 많은 물을 마셔야 했다. 노다지는커녕 변변히 먹을 것도 없는 척박한 습지였다.
많은 이민자가 굶어 죽었다. 초기 15년 동안 6000명이 이곳에 왔지만 3400명밖에 살아남지 못했다. 미국판 '고난의 행군' 속에서 그들은 생존의 법칙을 만들어갔다. 맨 처음 정해진 법은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No work, No food)'였다. '포도밭을 훔치거나 옥수수를 빼돌린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도 했다.
가장 중요한 룰은 '누구나 똑같은 투표권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먹을 것을 나누기 위해 미국에서 처음 민주적 투표가 실행된 곳이 바로 제임스타운이었다. 영국에서 출발할 때는 귀족도 있었고 성직자, 군인도 있었지만 모두가 목수, 유리 세공업자와 다른 특권을 누릴 수 없었다.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살았던 것이다.
제임스타운 경제는 금 덩어리가 쏟아지는 경제가 아니었다. 개척자들은 담배·목화 씨앗을 뿌리고 땀으로 키우고 유럽에 수출했다. 그들은 스스로 부(富)를 만들었고, 나눠 먹는 법도 스스로 터득했다. 경제학자들이 제임스타운 연구에서 끄집어 낸 결론 가운데 하나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어떻게 나눠 먹느냐는 과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가 잘 굴러갈 때는 다수 국민이 성장의 결실을 맛본다. 큰돈 버는 회사의 사원들은 월급이 오른다. 그늘이 짙은 곳에도 떡고물이 나눠지기 때문에 불만 세력이 커지지 않는다. 설혹 불평을 참다못해 길거리에 나서는 집단이 생겨도 그들을 달랠 수 있는 사탕은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가 침체하고 성장이 밑바닥을 헤매면 인간의 본성(本性)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먼저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나온다. 제임스타운에서 폴란드 출신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자 그들은 미국 역사에서 첫 파업을 단행해 투표권을 얻었다. 이쯤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제임스타운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나자 인간의 무서운 본능이 살육으로 나타났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이웃을 죽이고 인디언을 집단 살해했다. 인육(人肉)을 먹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우리 경제가 사실상 성장 정지(停止) 국면에 접어들면서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어떻게 나누느냐는 분배 문제다. 벌써 불길한 조짐이 늘고 있다. 인턴에 합격하고서 친구들에게 한턱 냈더니 국회의원 딸은 대기업 변호사로 특채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다는 계약서를 2년 새 16번이나 써야 했다. 바로 옆에서는 정규직 근로자가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말고 자동차 조립 라인으로 돌아와 느릿느릿 작업한다면 어느 비정규직이 참을 수 있을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밥 먹듯 '취업 새치기'를 해대고 정규직들이 옆자리의 빈곤층을 모른 척하면 눈에 핏발을 세우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만약 저성장이 마이너스 성장 국면으로 이어지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백성들도 어떤 험악한 본성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 그때는 '백의(白衣)민족' 족자를 내밀며 본디 평화를 사랑하는 순박한 국민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그 징조를 북한에서 보고 있지 않은가.
험악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우리들 스스로 나눠 먹는 방식을 정리해야 한다. 청년층은 아버지·삼촌 세대에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정부는 청년 세대를 등에 업고 노동 개혁을 밀어붙일 태세다. 야당은 여유자금이 많은 대기업을 털어먹자는 재벌 개혁론을 앞세우고 있다.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공존하는 방식에 합의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장이 멈춘 이 시대, 제임스타운의 엘리트들처럼 배부른 사람이 양보해야만 밥상을 뒤엎는 비극이 터지지 않는다. 정규직이 자기 것을 떼어주지 않는 한 비정규직이 배고픔을 덜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무원들도 지금 누리고 있는 특별한 혜택을 더 내놓지 않으면 국민은 고난의 길로 나서는 데 주저할 것이다.
언젠가 제임스타운에서 400여년 전 개척자들이 대서양을 건너면서 탔던 배와 당시 집단 생활하던 집을 복원(復元)해놓은 것을 보았다. '미합중국의 탄생지'라는 팻말 옆에는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쓰여 있었다. 험난했던 그 시절 신대륙 개척자들은 다 같이 생존할 수 있는 분배의 법칙을 터득해 오늘의 미국을 일으켰다는 말로 들렸다. 과연 우리는 성장 중단의 고통을 나누며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