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0일 오후 서부전선 고사포 도발 이후 2개의 전통문을 우리 측에 보내왔다. 북한 인민군(軍)과 노동당(黨)에서 각각 보낸 것인데, 추가 도발 가능성과 관련해 엇갈린 메시지를 담았다. 남한 내부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양동(陽動)작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오후 5시쯤 서해 군 통신선으로 보내온 전통문에서 '48시간 내 대북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하겠다'고 협박했다. 반면, 이보다 10분 앞서 판문점 연락관 채널을 통해 청와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보낸 김양건 노동당 비서의 전통문은 군사 행동 가능성을 언급하면서도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양건은 북한의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북한이 지뢰 도발에 의한 상황 악화라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북한이 서로 엇갈린 메시지를 보낸 것은 남한 내부의 혼란을 노린 것으로 분석했다. 도발, 대화, 보상으로 이어지는 과거 패턴의 반복을 노렸다는 것이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은 "긴장이 고조될수록 남한 내에서 대화와 협상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결국 북측 의도대로 일이 풀려가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4일 DMZ 지뢰 도발 사건 이후 유엔군사령부가 2차례에 걸쳐 제안한 장성급 군사회담을 모두 거부했다. 지난 5일 우리 정부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은 전통문 접수조차 거부했다. 그랬던 북한이 이번에 자신들이 먼저 도발을 해놓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언급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자신들의 최고 존엄을 겨냥한 것인 만큼 어떤 수를 쓰든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추가 도발 시점에 대해서는 북의 '48시간' 위협과는 달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끝나는 28일 이후부터 다음 달 초까지가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한·미 훈련 기간에는 긴장만 고조시키다가 훈련이 끝나고 우리가 좀 이완됐을 때 기습적으로 도발을 해올 것"이라고 했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도 "한·미 훈련 중 더 큰 도발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기 때문에 (도발을) 하더라도 훈련 후에 할 것"이라고 했다.
도발 양상에 대해서는 확성기 조준 타격 외에도 중서부전선에서 갑작스러운 기관총 난사, DMZ 인근 매복 작전에 들어간 우리 군 장병을 노린 소규모 포격 등의 가능성이 거론된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정은은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이기 때문에 갑자기 스커드를 쏘라고 할 수도 있다"며 "자신들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해상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이 공화국 창건일(9월 9일)과 당 창건일(10월 10일)까지 도발 수위를 점차 높여 결과적으로 추가 핵실험이나 신형 장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나아갈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회복 불능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를 접대한 맹경일 북한 노동당 통전부 부부장이 '박근혜 정부와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남성욱 교수도 "현 정부에서 더 이상 의미 있는 대화는 힘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