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9] 노인과 권력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8.20 03:00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로마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는 누구였을까? 다양한 의견이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옥타비아누스, 콘스탄티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뽑는다. 공화정이었던 로마를 제국으로 탈바꿈시킨 옥타비아누스와 기독교를 받아들인 첫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생소하다.

    고대 로마제국에는 큰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바로 황제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실질적 황제가 된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명칭을 '아우구스투스(가장 존경할 만한)'로 정하고 원로원을 유지했기에 적어도 형식적으로 로마는 '공화국'이었다. 더구나 로마인들은 주변 국가들처럼 큰아들이 자동으로 왕권을 물려받는 제도를 '야만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황제들은 혈통은 아니지만 능력 있는 후계자를 입양하거나, 군대와 원로원에게 친아들의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후계자 선택의 혼란은 반복된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나라는 내전과 폭동에 시달렸다. 기원후 194년 한 해에만 5명의 후계자가 황제 자리를 놓고 내전을 벌였을 정도였다.

    망해가던 로마를 다시 일으킨 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였다. 방법은 과격했다. 황제 자리를 일반인은 눈빛마저 마주칠 수 없는, 마치 신 같은 존재로 바꾸고, 2명의 시니어 황제와 2명의 주니어 황제가 함께 통치하는 사두정치(tetrachia)를 시작한다. 시니어 황제가 사망하면 주니어 황제가 승진하는 시스템을 통해 후계자의 불확실성을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역사상 그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일을 실행한다. 모든 정권을 장악한 그는 기원후 305년 스스로 황제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 총수의 후계자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같이 노인이 된 권력자 자리를 놓고 형과 동생, 아들과 아버지가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로마제국의 '큰 비밀'이며, 제국 멸망의 씨앗이 되었던 후계자 문제. 대한민국 경제 역시 비슷한 '큰 비밀'을 하나 갖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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