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이 걷힌 16일 중국 톈진(天津)항 폭발사고 현장에는 폭발로 깊게 파인 지름 약 70m의 웅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2일 밤 11시 30분(현지 시각)쯤 이곳에서 대형 폭발 사고가 두 차례 일어나 100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고 닷새째인 16일에도 중국 당국의 미숙한 대응에 톈진 시민들의 불신은 커지고 있다.
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톈진 폭발사고로 112명이 숨지고 95명이 실종됐으며 722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망자 중에서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28명뿐이다. 21명이 사망하고 85명이 실종된 소방관 신원조차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 중 다수가 계약직이라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중국망은 전했다. 14일 톈진시정부 4차 기자회견장에는 실종 소방관 가족들이 단체로 들어와 "사망자 공개를 투명하게 하라"며 항의해 기자회견이 중단되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생화학부대의 스루쩌(史魯澤) 베이징군구참모장은 이날 오후 "사고 지점에 수백t 규모의 청산소다가 있고, 그중 일부가 유출돼 다른 곳에서 검출됐다"고 말했다. 이 청산소다를 생산한 허베이성의 업체는 "사고현장에 방치된 청산소다는 700t 규모"라고 밝혔다. 지난 14일 중국 현지언론이 이 사실에 대해 보도했을 때 중국 당국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14일 기자회견에서 "공기에는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던 텐진시 환경부 선임엔지니어 바오징링(包景�)은 16일 기자회견에선 "사고현장 근처 일부 지역에서 공기 중 시안화물(청산가리 성분)이 기준치보다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중국 당국의 초기 발표 내용이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뒤집어지자 중국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사고 사망자 최소 1400명' '반경 1㎞ 이내 모두 사망' 등의 괴담이 확산됐다. 앞서 14일에는 톈진시가 사고지점 반경 3㎞ 이내 '긴급 소개령'을 내렸다는 소문이 돌아 사고현장 인근 주민들이 '피난'을 가는 소동도 벌어졌다.
15일 오후 4시쯤 중국 관영 CCTV는 현장 중계로 "소화 작업 중 구조대가 사고지점 서쪽에서 동쪽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구조대가 철수한다'는 소문이 퍼져 생겨난 오해"라고 전했다. 중국 인터넷정보처는 확산되는 괴담을 막기 위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모바일 메신저 위챗에서 유언비어를 유포한 360개 계정을 폐쇄·정지시켰다.
사고현장 인근 아파트 주민 수백명은 16일 '난민 청원'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청원서에서 "정부가 우리들에게 사고 원인과 현장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며 중국 정부에 주민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청산소다(시안화나트륨)
도금·살충제 등에 사용되는 맹독성 화학 결정체인 시안화나트륨을 말한다. 청산소다는 청산에 나트륨이 결합된 것이고, 비슷한 이름의 청산가리는 청산에 칼륨이 결합된 것이다. 청산소다 치사량은 성인(몸무게 60kg 기준)의 경우 0.9g이고 청산가리는 0.6g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청산소다가 물에 녹으면 독가스 시안화수소를 생성하는 것을 이용해 살상용 무기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