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8] 우아하게 망할 권리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8.13 03:00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무려 72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그는 수많은 전쟁과 초호화판 베르사유 궁전 건설로 나라 경제를 파탄시켰다. 나라의 부와 재산을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던 루이 14세는 "내가 곧 국가니라"라는 말로 유명하다.

    국가는 그 어느 개인 소유가 아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총리든 말이다. 하지만 국가 운영을 잠시 위탁받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들도 간혹 위탁과 소유를 착각하는 혼동에 빠지곤 한다. 그리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얼마 전까지 재무장관이었던 야니스 바루파키스 이야기다. 주변국보다 낮은 생산성, 세금을 회피하는 국민성, 독립적 환율 조절이 불가능한 유럽 단일 화폐. 이 모두가 천문학적 국가 부채를 만들어내고, 그리스는 유로 그룹 채권단과 IMF에서 구제금융 지원을 받게 된다. 1997년 IMF 사태를 겪은 우리로서는 얼마나 수치스러운 상황인지 잘 기억한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는 수치보다 자존심을 선택한다. 특히 천재적 게임 이론가이자 경제학 교수인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는 개인과 나라의 자존심을 혼동한다. "유로 그룹 장관들이 게임 이론을 이해하지 못해 제대로 된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현실은 바루파키스의 미분 방정식 능력도, 퇴직자 연금은 절대 삭감할 수 없다는 총리 치프라스의 도덕성도 아닌, "힘과 돈이 없으면 국제사회에서 무의미해진다"는 마키아벨리식 단순 공식으로 결정된다.

    전쟁과 약탈과 강간의 과거를 부인하려는 아베 일본 정부. 우리는 당연히 분노한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일 뿐이다. 더 큰 국익을 위해 협상하고 참고 대화해야 하는 게 리더의 몫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잘살고, 더 세련되고, 더 자유로운 나라가 되는 순간, 그들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가 역사의 진실이 된다. 개인의 분노와 자존심을 국익과 혼동한다면 우리도 그리스와 같이 '우아하게' 망하고 무의미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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