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수사 不實… 처벌 못하는 '대구 여대생 죽음'

입력 2015.08.12 03:00 | 수정 2015.08.12 10:35

17년前 성폭행후 죽음으로 몬 스리랑카人, 항소심서도 무죄
"성폭행 인정되나 時效 지나 강도행위는 증거 부족" 판결
"공범들로부터 전해 들은 학생증 빼앗았다는 진술 너무 구체적… 신빙성 떨어져"
검찰, 대법원 上告 방침

17년 전 여대생 정은희(당시 18세)양을 성폭행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피의자에게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반전을 거듭해온 '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망 사건'이 피해자는 있지만 처벌은 없는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11일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범균)는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K씨는 1998년 10월 17일 다른 스리랑카인 2명과 함께 정양을 성폭행하고, 정양의 소지품을 빼앗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양은 당시 대구 구마고속도로 위에서 23t 트럭에 치여 숨졌는데, 범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직후 고속도로 가드레일을 넘어 도망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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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대생 성폭행 사건, 2심도 '무죄' TV조선 바로가기
이번 항소심에선 1심에서처럼 특수 강도·강간 혐의 중 강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무죄판결이 났다. 성폭행 혐의는 정양 속옷에 묻은 DNA가 K씨 것과 일치해 입증이 충분했지만, 특수 강간죄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1998년 발생한 이 사건의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검찰은 "K씨와 범인들이 정양의 책과 학생증 등 소지품을 빼앗았다"는 다른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을 확보해 K씨를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 강도·강간 혐의로 2013년 기소했다.

하지만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모두 증인으로 나온 스리랑카인들의 진술(소지품 탈취)을 믿을 수 없고, 혐의를 입증하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증인들이 사건을 목격한 것이 아니고 공범인 D씨에게서 전해 들은 진술(전문진술·傳聞陳述)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나자 1998년 한국에 체류했던 스리랑카인 중 아직 한국에 남아 있는 34명을 전수조사했고, 공범 D씨에게서 사건 내용을 자세히 들었다는 새로운 증인을 찾아내 항소심 법정에 세웠다. 이 증인은 "K씨가 정은희양의 책을, D씨는 학생증 사진을 빼앗았다고 들었다"며 "D씨가 정은희 양의 학생증 사진을 지갑에서 꺼내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 진술이 범인들의 강도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부분이라고 봤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증인이 17년 전에 들은 내용을 성폭행한 순서와 수법, 범인들이 소지품에 손을 댄 시점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기억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D씨가 증인에게 보여줬다는 학생증 사진도 정은희양의 사진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증인들의 진술이 일부 다른 점도 신빙성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재판부는 "성폭행 범행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강도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 한) 성폭행만으로는 공소시효가 지난 점이 명백해 그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증인 진술이 추상적이어서 믿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구체적이어서 믿기 어렵다는 건 억지 논리"라며 "증인들 진술이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거의 일치하는 점을 봐주지 않고, 일부 진술이 서로 다르다는 부분에 집중해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고 했다.

1심과 항소심에서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면서, 이 사건 초동 수사가 엉망이었다는 비난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처음엔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사고 현장에서 정양의 속옷을 발견해 성폭행 범행을 처음 주장한 것도 정양의 아버지였고, 끊임없이 탄원서와 진정서를 내 15년 만에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게 한 것도 아버지였다.

이날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69)씨는 K씨가 앉은 피고인석에서 5m가량 떨어진 방청석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죄가 선고되자 정씨는 K씨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법원을 나섰다. 그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원래 채소 장사를 하던 정씨는 17년 동안 경찰, 검찰, 청와대 등에 100회 가까이 탄원서, 진정서를 냈다. 헌법소원도 냈다. 정씨는 "아직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지하철 승강장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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