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른 길 택한 이들, 전설이 되다

조선일보
  • 한현우 기자
    입력 2015.08.12 03:00

    들국화 1집 30주년 인터뷰
    '행진' 등 수록 全曲 히트한 1집
    "급하게 만든 앨범이긴 하지만 우리가 뜻하는 바 모두 담아내
    머리 자르라 요구에 TV 안나가… 'PD 선생님' 무시한 최초의 그룹"

    그것은 언더그라운드 최초의 승리였고 한국 음악의 핵(核)이 변두리로 옮겨가 폭발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도발적 음악에, 1980년대 청년들은 울분을 환호로 치환하는 법을 배웠다. 들국화 1집이 1985년 9월 나온 지 꼭 30년이 됐다. 첫 곡 '행진'부터 마지막 곡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9곡 전곡이 히트한 전무후무한 기록, 심지어 당시 '건전가요' 명목으로 녹음한 마지막 트랙 '우리의 소원'까지 명곡 반열에 오른 앨범이다.

    이 앨범의 주인공 네 명은 전인권(61) 최성원(61)·조덕환(62)·허성욱(1962~97)이다. '들국화의 엘튼 존'이었던 허성욱은 35세에 교통사고로 숨졌다. 뿔뿔이 흩어진 나머지 세 멤버를 최근 각각 만났다. 전인권은 '전인권밴드'로 활동 중이고 최성원은 제주에 살면서 제주KBS FM '제주도의 푸른 밤 최성원입니다'를 진행하고 있다. 1986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2009년 귀국한 조덕환은 2011년 첫 솔로 앨범을 낸 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1985년 들국화 1집은 당시 무기력하던 청년들의 탈출구였다. 들국화는 진공(眞空)처럼 사람들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왼쪽부터 최성원·전인권·조덕환. /이진한 기자 허재성·장련성 객원기자
    "들국화 1집은 안간힘으로 만든 앨범"

    서곡(序曲) '행진'은 들국화의 포고령(布告令)이었다. 파격적인 피아노 리프에 이어 베이스가 뭉근히 멜로디를 떠받치면, 클라리넷이 여명(黎明)처럼 곡을 감싼다. 곧이어 전인권이 "나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하고 노래를 열어젖힌다. "행진/ 행진/ 행진/ 하는 거야"라는 후렴의 패기는 그로부터 10년 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로 이어졌다.

    "'행진'은 맨 마지막에 작곡했다. 빠른 노래가 필요했다. 1절은 10분 만에 썼다." 이 노래를 쓴 전인권의 말이다. 전인권은 "제작자가 하도 재촉해서 급히 만들었다. 음악이 아니라 안간힘으로 만든 앨범"이라며 "너무 창피해서 우리 모두 그 음반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최성원은 "한 가지 떳떳한 것은 아무에게도 굽히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앨범"이라고 했다. 앨범 발매 후 몇 달 안 돼 팀을 탈퇴한 조덕환은 "그 앨범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훗날 미국에서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며 "호평받기엔 쑥스러운 면이 있는 앨범"이라고 했다.

    들국화는 1982년 결성돼 밤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84년 '따로또같이' 공연 게스트로 서면서 '들국화'란 이름을 지었다. '들국화'가 당시 허성욱이 갖고 있던 껌 상표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 공연에서 관객들이 '그것만이 내 세상'을 처음 들었다. 열광, 광란이 아니라 난리가 났다. 그때 '우리도 음반 한번 내볼까?' 하고 생각했다."(최성원) 최성원은 '그것만이 내 세상'을 자신이 읊조리는 창법으로 부르려고 썼다. 그러나 "전인권더러 부르게 했더니 그게 더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고려대 밴드 '고인돌' 출신으로 '세계로 가는 기차'와 '축복합니다' '아침이 밝아 올때까지'를 쓴 조덕환이 가세해 4인조가 됐고, 나중에 정식 멤버가 된 주찬권(1955~2013)은 세션 드러머로 참여했다.

    들국화 1집 재킷.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전인권·조덕환·최성원·허성욱.
    TV를 무시한 최초의 밴드

    전인권은 들국화 1집이 180만장 팔렸다고 했다. "지금 40대 후반이 우리 팬들이었는데 그 음반 없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당연히 TV에서 출연하라고 성화였다. 이들은 나가지 않았다. 머리를 잘라라, 노래 길이를 줄여라, 말도 안 되는 요구 때문이었다. 전인권은 "버들잎을 따면서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부르라고도 했다"고 했다. 최성원은 "그때 모든 PD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우리한테 음악을 가르쳐줬는가. 시킨다고 하는 놈들이 미친놈들"이라며 "우리는 PD를 무시한 최초의 그룹"이라고 했다. 조동진의 부탁으로 딱 한 번 MBC에 출연했다. 전인권은 머리카락을 셔츠 뒤에 숨겼다가 생방송 직전에 풀어헤쳤다. 담당 PD(신종인 전 울산MBC 사장)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조덕환은 "우리는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처럼 모든 멤버가 싱어송라이터여서 곡마다 색깔이 다르고 하모니의 장점이 있었다"며 "특히 허성욱의 독보적인 피아노 덕분에 전인권의 노래가 엄청나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했다.

    들국화 1집은 훌륭하기 이전에 달랐다. 남들이 하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았다. 들국화는 결국 전설이 되었다. 똑같은 꼭두각시들이 TV 쇼에서 판치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들국화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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