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게는 국적이 있는가?
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
중국 장강상학원 전략전공 교수
조동성
오성 이항복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항복 집에는 감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가 크게 자라 옆집으로 가지가 뻗어나갔다. 옆집 하인이 그 나무에 달린 감을 따는 것을 보고 이항복이 옆집을 찾아갔다. 집 주인이 앉아있는 안방 문 창호지를 뚫어서 방안으로 주먹을 넣은 다음 주인에게 질문했다. "이 손이 어른 손인가요, 제 손인가요?" 주인이 "참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소년이로고… 이 손이 자네 손이지 어떻게 내 손이겠는가?" 하니, 이항복은 "그럼 어른 댁에서 따신 우리 집 감을 도로 내 놓으시오'"라고 했더란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성어가 나온 유래를 소개한다. 옛날 중국 초나라 왕이 제나라 사신인 안평중을 골려주고자 했다. 제나라 출신 죄인을 일부러 골라서 앞을 지나게 하고는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군요."하고 혀를 찼다. 안평중은 “귤은 강 남쪽에서 자라면 귤이지만, 강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남쪽과 북쪽은 토양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가 좋지 않은가 봅니다.”하고 답변하였다.
롯데그룹이 일본기업인가 한국기업인가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일단 감성적 접근을 배제하고 이론적으로 논란을 풀어보자. 이를 위해서는 두 단계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을 국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가? 둘째, 기업을 국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분류할 것인가?
첫째, 국적 분류 가능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펄뮤터 (H. V. Perlmutter) 교수는 기업을 기업경영자의 태도나 의사결정과정에 따라 EPRG 즉, 본국시장중심 (Ethnocentric) 기업, 해외시장중심 (Polycentric) 기업, 지역시장중심 (Region-centric) 기업, 세계시장중심 (Geocentric) 기업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기업이 본국시장중심이나 해외시장중심 단계에서는 국적이 있지만 지역시장중심이나 세계시장중심 단계가 되면 국적이 사라진다고 보았다.
둘째, 국적 분류 기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이들을 종합해보면 주주의 국적, 경영자와 근로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국적, 본사의 소재지, 공장의 소재지, 기술, 인력, 자금을 비롯한 기업의 핵심자원의 위치, 기업문화, 풍토를 비롯한 경영 메커니즘의 성향, 소비자의 국적, 납세 위치 등이 그 분류기준이 될 수 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국적을 가리는 이유이다. 취업희망자는 자신의 꿈을 달성할 수 있는 기업을 고르고 싶어하고, 사업파트너를 선택하려는 기업은 그 기업의 자원과 문화, 경영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며, 국민경제 입장에서는 기업이 그 나라에 공헌을 얼마나 하는가를 따지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 주로 기업의 국적을 생각하게 된다.
후일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쉬 교수는 "누가 우리인가?(Who is us?)"[1]라는 글에서 IBM, 모토롤라, GM과 같이 해외로 공장을 내보내는 기업보다 소니, 톰슨, 필립스와 같이 미국에 공장을 세워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이 더 미국기업이라는 논리를 폈다.[2] 펄뮤터 교수 이론을 적용해보면, 라이쉬 교수가 거론한 기업들은 미국기업도 외국기업도 아니다. 이들은 지역시장중심인 다국적기업이나 세계시장중심인 세계기업으로서 탈국적, 무국적 기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롯데그룹은 어떤 기업인가? 법적, 논리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롯데그룹은 다른 기업이다. 신격호 회장이 1948년에 시작한 일본롯데그룹은 본국시장중심 기업이었다가 한국에 투자한 1967년부터 해외시장중심 기업으로 바뀌었고 그 성향은 지금까지 계속된다.
1967년에 시작된 한국롯데그룹은 형식적으로 본국시장중심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일본롯데그룹의 자회사였다. 이 때의 한국롯데그룹은 해외시장중심 기업의 일부였다. 그러나 창립 20년 후인 1987년 독립경영을 시작하면서 해외중심기업의 본체가 되었고, 2004년 신동빈 회장이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에 취임하여 중국을 비롯한 해외로 시장을 넓혀가면서 지역시장중심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신동빈 회장은 중국 사업에서 일본이나 한국에서 이룬 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결과 신격호 회장으로부터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해외시장중심에서 지역시장중심으로 경영방식을 전환하여 성공하는 것이 큰 위험부담과 긴 회임기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라는 명제를 놓고 볼 때, 신격호 회장은 본국시장중심과 해외시장중심 성향을 가진 경영자이고 신동빈 회장은 지역시장중심 성향을 가진 경영자이다. 신동빈 회장의 지휘 하에 중국으로 진출한 한국롯데그룹은 최근 일본롯데그룹을 통합함으로써 해외시장이 2개 이상 되는 지역시장중심기업으로 전환을 하고 있다.
위 분석에 의하면 창업후 지금까지의 한국롯데그룹은 국적이 있는 기업이었고, 앞으로 신동빈 회장의 지역시장중심 전략이 성공하면 국적을 떠난 기업이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통합한 롯데그룹은 어느 나라 기업인가? 주주국적을 기준으로 볼 때 일본롯데홀딩스를 비롯한 일본기업들이 한국롯데그룹의 모기업인 롯데호텔의 대주주이므로 한국롯데그룹은 일본기업이다. 근데 이들 일본기업의 주주는 한국국적을 버리지 않은 신격호 회장과 한국국적을 취득한 신동주 부회장, 신동빈 회장이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기업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에서는 일본롯데그룹이 일본기업이 아니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경영자와 근로자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국적을 보면 한국롯데그룹의 규모가 일본롯데그룹의 15배 정도 된다고 볼 때, 분명히 한국기업이다. 본사의 소재지와 공장의 소재지 기준을 적용해도 한국기업이고, 기술, 인력, 자금을 비롯한 기업의 핵심자원의 위치 역시 롯데그룹을 한국기업으로 분류하게 해준다. 기업문화, 풍토를 비롯한 경영 메커니즘의 성향을 보면 토종 한국기업에 비해서는 일본기업 면모가 나타나지만, 그래도 일본기업보다는 한국기업 성향이 많다. 소비자의 국적, 납세 위치를 보면 한국기업임에 틀림없다.
세어보면 여덟 가지 기준 중 한일 통합 롯데그룹을 한국기업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기준이 7개, 일본기업과 한국기업의 중간 정도로 볼 수 있게 하는 기준이 1개이다. 반면 한국롯데그룹에 여덟 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주주의 국적으로 인해 한국 성향 6개, 한일 중간 성향 1개, 일본 성향 1개로 한일 통합 롯데그룹보다 한국적 성향이 낮아지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바로 여기에 한국 사회에서 한국롯데그룹에 대한 국적 논란을 하는 이유가 있다. 국민경제 입장에서 한국롯데그룹이 어느 나라에 큰 공헌을 하는가를 따진다면 일자리 창출, 소비자 만족, 세금 납부 등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기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계산이 복잡한 공헌도와 같은 기준보다 기업의 주인을 주주로 보고, 주주의 국적을 따져 보는 것이 더 쉽고 확실한 국적 셈법이다. 한국롯데그룹이 일본주주들에 의해 지배된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한국롯데그룹이 한국사회에 대한 공헌 이상으로 일본기업들로 구성된 주주에게 배당금을 많이 주거나, 일본주주들이 주식을 매각해서 엄청난 매매차익을 올리는 것을 한국경제에 불리하다고 보게 된다.
한국롯데그룹의 주주구성에 대한 사회적 반감은 역사적으로 증폭되었다. 개발연대이던 1960년대 이후 정부는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 기업인들에게 독점을 비롯한 각종 혜택을 주었고, 이 때 신격호 회장에게도 같은 혜택을 주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롯데호텔은 초기만 해도 일본 국적을 가진 주주가 50%였으나, 그 후 일본국적 주주 비중이 더 크게 늘어났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는 정부가 내국인에게만 주던 특혜를 주어서 키운 한국롯데그룹의 소유권이 일본으로 넘어갔다고 보고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한국정부도 한국롯데그룹의 국적 논란에 큰 책임이 있다. 개발연대 당시 한국기업이라는 전제 하에 특혜를 받았던 한국롯데그룹의 주주들이 일본 기업 중심으로 바뀐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기업에게 더 이상 특혜를 주지 않는 오늘날에 와서도 여전히 차별적 특혜를 준다면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롯데그룹에 대한 국적논란은 한국 경제가 개발연대에서 시장경제로 넘어온 변화 속에서 개발연대에 익숙해있던 정부관리와 기업경영자들, 그리고 국민들이 겪어야 하는 성장통인지도 모른다.
결론을 세 가지로 정리해보자. 첫째는 글로벌 시대에 주주구성, 지배구조, 경영방식에서 글로벌하지 못한 한국롯데그룹의 문제이다. 롯데그룹의 경영자는 일본을 뿌리로 한 한국롯데그룹을 당당한 한국기업으로 바꿔야 한다. 정부가 특혜를 준 이상으로 그룹의 경영을 탄탄히 해서 경영성과를 높이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 소비자 만족, 세금 납부 등 국가경제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주요 계열기업들을 공개해서 주주 구성의 투명성을 갖추고 주주를 일본 일변도에서 탈피하는 것은 그룹 회장의 가장 큰 과제이다. 이 때 기업가치와 사회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공유가치창출을 선도한다면 한국롯데그룹은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국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미래지향적 기업으로 새롭게 나타날 것이다.
둘째는 글로벌 시대에 맞는 공정한 경쟁체제를 확립하지 못한 결과, 기업을 글로벌 방향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문제이다. 한국정부가 한국롯데그룹을 진정한 한국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면 한국롯데그룹이 정부 특혜 없는 공정한 룰 밑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시장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셋째는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글로벌 시대에 맞는 기업유형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여 왔다. 그러나 이제는 기업이 자신의 가치만 강조하는 보수도 아니고 사회가치만 강조하는 진보도 아닌, 기업 가치와 사회 가치를 함께 높이는 공유가치창출의 시대로 들어섰다. 일본기업 주주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고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좁은 소견이다. 그보다는 한국롯데그룹이 일본주주에게 배당금을 주는 이상으로, 한국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하게 하고, 지금보다 미래에 경영을 더 잘해서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사회적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뿌리에 관심 있는 오성 이항복이 보면 일본기업이고, 기업풍토에 관심 있는 안평중이 보면 한국기업이라고 할 롯데그룹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지역시장중심 경영에서 성공한 다음, 세계시장중심으로 경영방식을 바꾸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더 이상 국적논란에 휩싸이지 않는 한국 기반의 세계기업이 될 날을 기대한다.
[1] 1990년 1-2월 Harvard Business Review. https://hbr.org/1990/01/who-is-us
[2] 그는 이 논리를 기반으로 클린턴 대통령의 첫 임기 4년간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고, 그의 업적은 그를 20세기에 재직한 미국 장관중에서 가장 훌륭한 10명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858368_1858367_1858356,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