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7] 아름다움이란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8.06 06:13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서울 강남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간판들을 보고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 코, 얼굴, 가슴…. 몸 모든 곳을 '아름답게' 변신시켜준다는 광고와 성형 병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언제부턴가 '성형 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성인이 자기 기준에 따라 아름다워지겠다는데 사회가 간섭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 아름다움은 우리 모두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그 아름다움의 정의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진화적 기원은 간단하다. 대부분 생명체는 '초강자극(super stimuli)'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하드웨어를 갖고 있다. 개구리는 움직이는 검정 점에 혀를 자동으로 내밀고, 병아리들은 땅에 비치는 십자가 모양 그림자를 독수리로 착각해 두려워한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남자는 콜라병 몸매의 여성을, 여자는 어깨가 넒은 남성을 선호하고, 대부분 사람은 어린아이같이 큰 눈을 가진 애완동물과 만화 캐릭터에 호감을 느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3대 덕, '진·선·미'의 진화적 의미는 이렇게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진화가 완성시킨 유전은 행동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뇌가 만들어낸 생각의 힘,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와 문명 역시 우리 선택과 판단을 좌우한다. 그렇다면 진화적 차원을 벗어난 아름다움의 정의는 무엇일까? 세상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과 무질서로 가득하다. 반면 판단과 행동은 질서를 요구하기에,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을 기반으로 미래 예측을 시도한다. 예측한 미래는 안전하고, 예측하지 못한 미래는 위험하다. 그렇다면 인지적 아름다움은 이해하지 못하던 무언가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을 때 느끼는 느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현실의 무질서가 생각의 질서로 변하는 과정이라는 말이다.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스탕달은 그렇기에 아름다움을 '행복의 약속'이라고 표현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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