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50세 여성 유방암과 60세 남성 대장암의 공통점

조선일보
입력 2015.08.04 03:00

사회 진출과 늦은 결혼·출산, 母乳 수유 어려운 女 유방암
격무 시달리고 술·고기 會食, 운동 못해 배 나온 男 대장암
모두 '다이내믹 코리아' 산물… '숙명' 깨닫고 檢診 잘 받아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사진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현재 암(癌) 중에서 한국 여성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유방암이다. 한 해 약 2만명이 생긴다. 숫자로 치면 4만명이 넘는 갑상선암이 더 많지만 갑상선암은 생존율이 워낙 높고, 과잉 검진 논란이 있다. 진단 순간에 여성의 삶을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암은 단연 유방암이다. 환자는 전국에 14만명쯤 된다. 조그만 도시 전체 인구다.

한국 유방암에는 일반적인 암 발생 행태와 다른 희한한 현상이 있다. 암은 주로 노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전자 변이로 발생한다. 발암 요인이 누적돼 있다가 노후화된 몸을 파고든다. 나이가 들수록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이유다. 그 결과로 세 명 중 한 명꼴로 암에 걸려 세상을 마친다. 한참 나이를 먹어 세포가 더 노쇠해지면 세포 활성도가 떨어져 세포가 마구 자라는 암 발생도 준다. 그래서 암 발생은 대개 70대에 정점을 친다. 미국의 유방암도 40대부터 발생률이 높아지기 시작해 70대에 피크를 이룬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한국 여성의 유방암은 40대에 가장 많다. 40대 말~50대 초의 폐경기 전후에 몰려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미국 의학자들도 신기해했고, 한국 의사들도 궁금해했다. 여러 분석 결과 한국 여성이 유전적으로나 체질적으로 유방암에 유난히 취약한 것은 아니다. 원인은 의학이 아니라 사회학에 있었다.

지금의 한국 유방암 피크 세대는 197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냈고,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다. 이 시기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기와 맞물린다. 그들은 영양 발육 상태가 좋았다. 최소한 못 먹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고기 맛 좀 본 세대이고, 1988년 압구정 1호점 맥도날드 원조 세대다. 햄버거를 주식으로 삼은 첫 세대다. 여기서부터 한국 유방암은 태동한다. 동물성 지방질 섭취의 증가는 유방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그 첫 주자들이 지금 유방암 피크 나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한편 여성의 몸이 에스트로겐, 즉 여성호르몬에 노출된 기간이 길면 길수록 발생 유방암 위험은 커진다. 어린 시절의 좋은 영양 상태는 초경 나이를 당겼다. 1970년 15세이던 초경 나이는 2000년에는 열두 살로 낮아졌다. 그만큼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이 일렀고 길어졌다는 의미다.

1990년대는 민주화 물결과 맞물려 페미니즘도 봇물이 터지듯 했다. 자식이 많아야 둘인 상황에서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급격히 높아졌고, 이들의 사회 진출은 활발했다. 여성이 본격적으로 결혼 대신 직업을 택한 시기다. 그 과정을 거쳐 여성의 초혼(初婚) 나이는 20대 중반에서 서른 살로 넘어가게 됐다. 미룬 결혼은 늦은 출산으로 이어졌고, 늦은 출산은 적은 자녀로 맺어졌다.

여성은 임신 기간 여성호르몬 분비가 줄고, 대신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 임신과 출산을 안 한 기간만큼 여성호르몬 노출 기간은 길어졌고, 덩달아 유방암 발생 위험은 커졌다. 기혼 여성의 급속한 사회 진출은 미처 모유 수유 환경을 만들지 못했다. 유방암 예방 효과가 있는 모유 수유를 분유가 대신하게 됐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분유 회사의 호시절이기도 했다.

유방암 정점 50세 현상은 그때 여성이 한국 사회에 태어나서 자라고 발전하면서 살아온 부산물이다. 사람은 사회를 만들고, 사회는 질병을 만든다고 했던가. 어찌 보면 한국 유방암은 여성의 사회적 지분과 생물학적 파생물의 맞교환 결과다.

60대 장년 한국 남성들의 대장암 발생 증가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들은 초고속 성장의 시기를 격무와 긴 노동 시간으로 보냈다. 낮시간의 엄숙한 분위기는 밤시간의 알코올과 삼겹살 회식 소통을 낳았다. 운동 부족에 고기 섭취량만 늘어나는 구조였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영양 부족은 고기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서 고기를 조금만 먹어도 뱃살을 만들었다. 그 부속물이 대장암 증가 세계 1위인 것이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다이내믹 코리아로 누구나 압축 성장 후유증에 취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50세 여성 유방암과 60세 남성 대장암의 뿌리는 같다. 아프게 해놨기에, 아플 환경에 놓였기에 암환자가 됐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50세 유방암 세대는 세월과 함께 70대까지 유방암 발생 정점 나이를 높여 놓을 것이다. 60세 대장암 세대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대장암 발생 피크 나이를 덩달아 높여갈 전망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 태어난 것을 유방암·대장암 위험 숙명 세대로 받아들이고 더 철저히 검진을 받아야 한다. 국가는 이들 세대의 암 검진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저출산 환경 극복이 유방암을 줄이는 길이고, 고용 안정이 대장암을 피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드니 앞으로가 걱정이다. 우리 사회의 성장통이 후세들에게는 이어지지 않았으면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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