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금요일 오후 대전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카페 칸은 '난민(難民) 열차'를 방불케 했다. 69㎡(약 21평) 크기인 카페 칸은 입석 승객 80여명으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3석인 카페 좌석은 열차 출발 전부터 만석이었고, 승객들은 자판기, 간이노래방, 쓰레기통 앞에 신문지나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미처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은 손잡이가 없는 카페 칸에 서서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휘청거렸다. 카페 칸 대부분을 차지한 20대 초·중반 여행객들은 어깨에 멘 커다란 배낭 때문에 흔들리는 기차에서 중심을 잡기 더 어려워 보였다. 이들은 '내일로'라 적힌 팔찌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이들 누구도 '이곳은 열차 카페 이용 고객을 위한 서비스 문화 공간입니다. 입석 고객님은 열차표에 지정된 객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붙어 있는 안내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카페 칸 바닥에 앉은 입석 승객들 - 지난 24일 오후 대전에서 출발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의 카페 칸에‘내일로’여행객 수십 명이 몰려들어 바닥에 앉아 있다.

간식을 사기 위해 카페 칸에 온 승객들은 인파를 비집고 다니느라 애를 썼다. 카페 칸의 순간 소음을 측정해보니 84데시벨(dB)까지 올라갔다. 공사장 평균 소음은 80dB이다. 객실도 입석 손님으로 붐볐다. 통로마다 사람이 서 있거나 앉았고, 객실 좌석 뒤 빈 공간에 6명이 바닥에 신문지를 넓게 깔고 둘러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화장실에는 휴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암모니아 냄새가 진동했다. 서울을 출발해 대전·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가는 이 무궁화호 열차엔 지난 6월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내일로' 여행객들이 몰리면서 '이 열차를 타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젊은이들이 저렴한 가격에 국내 여행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며 코레일이 만든 '내일로' 기차 여행 상품이 취지와 달리 열차 내 질서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007년 7월 도입된 '내일로'는 만 25세 이하면 하계(6~8월)·동계(12~2월) 기간 국내 새마을호·무궁화호 입석을 5일(5만6500원) 또는 7일(6만2700원)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출시 직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위 '대박'을 쳤다. 2007년 7841장이던 판매량은 2008년 1만3057장, 2009년 3만9867장으로 늘었고, 작년엔 19만2615장으로 8년 새 20배 이상 증가했다. KTX 도입 이후 떨어진 새마을호·무궁화호 이용률을 높일 수 있어 코레일에도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러나 열차 크기는 그대로인데 '입석' 손님만 폭증하면서 일반 이용객들 사이에선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주기적으로 대구~부산을 기차로 이동하는 전모(47)씨는 "통로에 사람들이 가득해 화장실 가기도 힘들고 소음으로 제대로 쉬기도 힘들다"며 "귀마개를 가지고 다니거나 이어폰을 꼭 낀다"고 했다. 지난 2년간 지방에 내려갈 때마다 '내일로' 여행객들과 같은 기차를 이용했다는 대학생 신지아(25)씨도 "카페 칸에서 계산 한 번 하는 데도 시간이 너무 걸려 학을 뗐다"며 "올해부터 여름과 겨울엔 시간이 더 많이 걸리더라도 기차 대신 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안전 문제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이날 저녁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새마을호 각 열차에선 '내일로' 이용객으로 보이는 20대들이 문 앞 계단, 열차 연결 통로 등 언뜻 보기에도 위험한 곳에 4~5명씩 앉아 있었다. 이들은 자동 제세동기, 소화기, 비상 망치 등 안전 장비를 가리고 서 있었다.

올해부터 코레일 측이 열차는 증차하지 않고 '내일로' 이용 대상 연령 제한을 만 28세까지로 늘리면서 불편은 더 커질 전망이다. 코레일 측은 "'내일로'를 위해 열차를 늘리진 않았지만 이용객이 더 늘어나면 수요가 높은 구간의 증차를 검토할 것"이라며 "출퇴근 시간에는 열차가 혼잡하다는 등 안내를 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성봉 서울과학기술대 철도경영정책과 교수는 "새마을호·무궁화호와 같은 일반 열차는 좌석 위주로 구성돼 애초 입석 승객을 위한 공간 자체가 넓지 않은데도 무작정 승객 수요만 늘리면 결국 일반 승객과 '내일로' 승객 모두의 불편만 가중된다"며 "기차가 굽은 길을 지날 때 승객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지거나 부딪치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