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여자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스트레스 받아요. 남자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주세요."

가수 지망생인 대학생 정모(21)씨는 두 달 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A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다른 남자 가수 지망생들보다 목소리가 가늘어 중저음 목소리를 원했던 그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주사 한 방으로 목소리를 바꿀 수 있다'는 광고를 보고 A 병원을 선택했다. 2만원을 내고 목소리 높낮이와 성량, 성대결절 여부 등 음성(音聲) 검사를 받은 뒤 "깔끔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바꿔주겠다. 부작용도 거의 없다"는 의사의 말에 30만원을 더 들여 시술을 받았다.

목소리를 바꾸기 위해 강남 성형촌(村)에 밀집한 이비인후과를 찾는 10~20대가 늘고 있다. 가수 오디션 TV 프로그램에 도전하려는 10대 가수 지망생이나 아나운서·스튜어디스를 준비하는 20대 대학생들이 주로 이 병원들을 찾는다. 각종 포털 사이트 블로그 및 성형 정보 사이트에는 시술 문의 및 후기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성공 사례기'엔 "나도 시술받고 싶다"는 댓글이 수십 개씩 달린다. 취직 준비생 B씨는 "면접관에게서 '목소리가 앵앵거린다'는 지적을 받고 바로 보톡스 시술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훨씬 어른스러워졌다"고 썼다.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 남성은 "목소리 잡음을 없애려 병원을 찾았는데 시술 2주째부터 차분해졌다"고 했다. 아나운서 준비생 김모(26)씨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서 전달력 있는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당연히 시술을 받겠다"고 했다.

병원이 말하는 '목소리 성형'은 원리가 간단하다. 보톡스로 피부 근육을 마비시켜 얼굴에 주름이 생기지 않게 하는 피부 주름 개선 시술과 원리가 같다. 목소리를 내는 성대 근육 중 '성대를 수축시켜 음을 높이는 근육'에 소량의 보톡스를 주입하면 근육이 마비돼 일시적으로 고음을 낼 수 없게 된다. 병원은 "날카로운 고음을 내는 근육이 마비되면 '잡음 없이 깔끔하고 진중한' 목소리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시술은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성대 부분에 마취 없이 의사가 주사기로 직접 보톡스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주입되는 보톡스양은 주름 개선 시술 때 쓰이는 보톡스양의 1/50~1/100 정도(약 0.04~0.05㏄)로 소량이다.

본지 기자가 지난 22일부터 이틀간 직접 '목소리 성형'을 해준다는 서울 강남·서초구 일대 이비인후과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시술은 30만~40만원 선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시술 시간은 보통 10~20분, 효과는 1~2개월 지속된다. 서초구의 한 이비인후과는 다른 환자의 수술 전후 목소리를 들려주며 "목소리가 탁한 것 같다. 급한 면접이나 발표가 있다면 주사 한 대로 즉각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기자에게 시술을 권했다. 일부 병원은 고음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300만~350만원을 받고 '성대단축술'도 시술하고 있었다. 성대가 길면 저음, 성대가 짧으면 고음이 나오는 원리를 이용해 성대 앞쪽을 꿰매 성대 길이를 짧게 만드는 방식이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수술 시간도 1시간~1시간 30분으로 보톡스 시술보다 더 걸린다.

그러나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목소리 성형'은 이론적으론 가능한 시술"이라면서도 "숙련된 전문의에게 시술받지 않으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보톡스를 너무 많이 주입하거나 잘못된 부위에 주입하면 다른 성대 근육도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가수 지망생인 20대 남성이 "보톡스를 맞았는데 깔끔한 목소리는커녕 나흘째부터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갈라져 고생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남순열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발성 훈련으로도 목소리를 개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개인병원에서 보톡스 시술을 받고 문제가 생겨 대학병원을 다시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선동일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도 "성대단축술은 수술 부위에 물혹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많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