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전복혐의 이승만… 사형 위기서 구해준 함태영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입력 2015.07.21 01:56

    [이승만 서거 50주기]

    법관양성소 1기 졸업생
    1898년 감형받게 도와줘… 건국 후엔 감사원장 지내

    1960년 3월 18일 함태영 전 부통령과 경무대에서 만나는 이승만 대통령 사진
    1960년 3월 18일 함태영 전 부통령과 경무대에서 만나는 이승만 대통령. /기파랑 제공

    이승만이 한성(서울)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돼 하와이 및 미주에서 활동할 수 없었다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승만은 1898년 정부 전복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고 1904년 7년 만에 석방됐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조부 함태영(1873~1964)이 이승만의 감형에 기여했다는 이야기를 아버지(함병춘·1983년 아웅산 사건 때 별세)에게 들었다고 했다.

    이승만보다 두 살 위인 함태영은 1895년 근대 최초의 법조인 양성기관인 법관양성소 1기 졸업생이다. 헤이그 밀사 이준이 동기생이다. 한성복심법원 판사였던 함태영은 1898년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입헌군주제 같은 위험한 주장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이가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청년이 붙들려 왔다. 청년 이승만이었다. 함태영은 이승만을 복심에서 감형했다. 함태영은 1910년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평양신학교를 거쳐 서울 연동교회 목사로 재직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 후 함태영을 심계원장(감사원장)에 임명했다. 1952년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무소속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함태영을 공식 지지했다. 함재봉 원장은 "조부와 이승만은 기독교를 비롯해 여러 행적에서 관계가 많았다"면서 "1905년부터 1945년까지 긴밀한 내왕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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