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한테 선거비 구걸한 놈 번호"

조선일보
  • 양모듬 기자
    입력 2015.07.23 03:00

    [美트럼프, 경쟁자 신상 공개에 막말까지… 공화당 대선 경선 진흙탕]

    "美軍 도움 받는 사우디처럼 한국도 공짜로 빌붙어" 지지율은 계속 올라 1위
    보다못한 다른 후보들 반발 "그는 癌 덩어리, 멍청이"

    머리가 희끗한 백인 청중으로 가득찬 유세장에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 출마를 선언한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69)가 나타났다. 지지자들은 작은 성조기를 흔들며 환호했다.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문구가 적힌 단상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21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블러프턴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는 평범한 공화당 선거전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실은 '막말 라디오 쇼'에 가까웠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의 '말화살'이 겨냥한 표적은 같은 당 대선 후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었다. 트럼프는 "바보(idiot) 같은 그레이엄이 나를 멍청이(jackass)라고 부르더라"고 운을 떼더니 과거 일화를 폭로했다. 4년 전 생면부지였던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선거 자금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가 21일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당내 경쟁 후보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실제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꺼내 흔들고 있다. /AP 뉴시스
    트럼프는 그레이엄의 말투를 흉내 내며 "트럼프씨, 그레이엄 상원의원인데요, 폭스뉴스에 (좋게 언급해달라고) 전화 좀 해주실 수 있는지 해서요. 제발, 제발"이라고 당시를 재연하더니, 금방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와 "그 말을 들으니 '뭐야, 이 사람 거지(beggar)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청중에게 쪽지를 보여주고는 "그레이엄이 그때 나에게 알려준 번호인데 통화 한번 해보자"며 쪽지에 적힌 10자리 숫자를 큰 소리로 두 번 읽었다. 미 CNN은 "이 번호는 실제 그레이엄 의원의 개인 번호였으며, 연설 직후 그에게 전화가 쏟아졌다"고 했다.

    우방국도 걸고넘어졌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에 수십억달러를 버는데, 문제가 생기면 우리 군대가 해결해준다. 하지만 우리가 얻는 것이 없다. 한국도…"라고 하자, 청중석에서 "미쳤다(crazy)"는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는 "미친 것이 사실"이라며 "그들(한국)은 하루에 수십억달러를 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익이 없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 출마 선언 당시 트럼프의 지지율은 3%였다. 하지만 이후 한 달여간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를 '성폭행범'에 비유하는 등 반(反)이민 발언을 일삼자 지지율이 치솟았다. 21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ABC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는 24%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스콧 워커(위스콘신 주지사)와 젭 부시(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각각 13%, 12%로 2~3위에 그쳤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트럼프가 공화당 내 팽배한 이민자 배척 성향을 건드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노이즈 마케팅'은 최근 역풍을 맞았다. 18일 베트남전(戰) 영웅이자 공화당 매파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포로로 붙잡혀서 전쟁 영웅이라고 불릴 뿐"이라고 폄훼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간 당원들의 표심을 의식해 트럼프의 언사를 묵인해 온 공화당 잠룡들도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릭 페리 전 텍사스 주지사는 트럼프를 '암(癌)'에 비유했고,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멍청이(jackass)'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소속이자 베트남전 참전 용사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도 "매케인을 붙잡은 이들은 그의 뼈는 부러뜨려도 정신은 꺾지 못했다. 그는 영웅"이라고 성명을 냈다. 워싱턴포스트는 "해군 조종사였던 매케인이 5년반 동안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 트럼프는 학업 등을 핑계로 네 차례 징병을 유예받았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언론의 관심이 만들어낸 거품"이라며 "매케인 발언으로 지지율이 급격히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