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삼시 세끼 밥 짓는 연기 솟던 굴뚝… 이웃 형편 짐작하는 통로 되기도

1945년부터 2015년 현재까지 광복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걸어온 시간들은 그 어떠한 것으로 정리를 하더라도 다 풀어낼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과 함께 해온 물건들의 탄생과 소멸을 담은 이야기 '물건의 추억'으로 한 사람의 개인사를 넘어선 광복 후 70년간의 추억을 함께 해보시기 바랍니다.

삼시 세끼 밥 짓는 연기 솟던 굴뚝… 이웃 형편 짐작하는 통로 되기도

입력 2015.11.11 08:34 | 수정 2015.12.30 10:03

초가지붕 위로 저녁연기가 피어 오르는 굴뚝. 어머니 목소리 같고 손짓 같은 연기다.

1991년 어버이날, 경남 울산의 어느 노부부가 39년간 아궁이에 매일 나무를 때고 있는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6·25 때 잃어버린 네 살 아들이 혹시나 살던 동네를 기억하고 돌아올까 싶어 굴뚝에 연기를 피워 온 것이었다. 집 잃은 아들에게 보내는 어버이의 봉화(烽火) 같은 굴뚝연기가 많은 이들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가정집 굴뚝은 오랜 세월 우리들에게 '연기 배출 통로'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추녀 밑 야트막한 굴뚝에서 삼시 세끼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연기는 집안 사정을 담장 바깥으로 알리는 신호였다. 바티칸 교황청의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비밀회의) 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피어오르는 흰 연기가 교황 선출을 알리듯, 어느 집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는 지금 밥을 짓는다는 표시였다. 벌판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자기 집 굴뚝 연기를 보고는 밥 먹으러 집으로 들어갔다. 배고팠던 시절엔 어느 집 굴뚝에서 제때에 연기가 나오는지 여부를 보고 그 집 사정을 눈치채기도 했다. 어떤 이는 끼니를 거르면서도 '이웃 보기 창피해' 때가 되면 아궁이에 종이를 태워 연기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 사정들을 알기에 옛날 어느 동네에서는 이웃이 화재나 홍수 등 재앙을 입으면 동네 사람들은 잠시 일가친척 집에 흩어져 지냈다고 한다. 끼니를 제대로 못 챙길 이재민에게 굴뚝 연기를 내고 밥냄새를 풍기지 않으려는 배려였다.(조선일보 1990년 9월 18일 자) 전남 구례 어느 마을의 굴뚝은 아예 어른 허리춤 정도의 높이로 낮게 설치했다. 가난한 이웃집에 자기 집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가정집 굴뚝이 출입문과 창문 못잖게 바깥과 소통하는 또하나의 창구이자 통로 구실을 한 셈이었다. 산타클로스가 남의 집에 '잠입'하는 통로로 굴뚝을 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에선 굴뚝으로만 침입해 공장 10여 곳을 턴 별난 도둑도 있었다.(조선일보 1959년 3월 19일 자)

김민기가 '강변에서'에서 노래했던, '파란 실오라기' 피어오르던 '순이네 뎅그런 굴뚝'들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시커먼 연기' 토하는 '공장의 굴뚝'들만 가쁜 숨을 내쉰다. 그래도 많은 한국인은 굴뚝의 아담한 자태와 흰 연기와 매캐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인천의 '16kg 소녀'도 굴뚝이 솟은 작은 집을 그렸다. 눈물 나서 보기 힘들었던 소녀의 그림에선 굴뚝 위로 연기 대신 작은 꽃송이들이 향기처럼 솟아나왔다. 온기(溫氣) 서린 굴뚝의 기억은 힘겨울 때 더 생각나는 어머니를 닮았다. 시인 오탁번은 이렇게 노래했다. "시는 저녁연기 같은 것이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

 

광복 70년 물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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