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중 정치부장

#1

숙명여대 국제학부 3학년 박채원양은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저녁 'UNEAR' 사무실로 간다. UN EAR는 '가까운 통일(Unification Near)'의 약어(略語)로 지난 5월 6개 대 여학생 30여명이 만든 통일연구학회다. 회장인 박양은 회원들과 통일 관련 신문 기사들을 놓고 토론을 하고 탈북 학생들을 멘토링해줄 준비도 한다. 1대1 멘토링은 주로 화요일과 목요일에 한다. 지난 3일엔 한충희 유엔 차석대사를 초청해 '대학생, 통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가졌다. UNEAR가 최근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이렇다. '①통일 교육에 참여한 적이 없다(85%) ②참여한 적이 없는 이유(중복 체크)는 어떤 교육이 있는지 몰라서(57%), 관심이 없어서(50.3%) ③현재 제공되고 있는 통일 교육에 만족하지 않는다(91.3%)' 이들의 목표는 '대학생 통일 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반영한 새로운 통일 교육 이니셔티브를 이끌자'는 것이다.

#2

연변과학기술대 곽승지 교수는 2008년부터 '남북통일과 조선족 동포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각도로 논문을 써왔다. 22일 열리는 재외 동포 포럼에서도 비슷한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내 조선족은 200여만명이다. 이들은 인적 교류, 대북 사업 등 각 분야에서 남과 북의 쌍방향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주민의 남한에 대한 1차적 인식은 조선족들을 통해 이뤄진다. 연합뉴스 북한팀장으로 일하다 작년 3월 연변으로 간 그는 "통일이 남북한은 물론 조선족과 재외 동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조선족을 포함한 700만 재외 동포들이 통일의 또 다른 주체인데도 소외돼 있다" "남한과 조선족의 관계는 양적으론 확대되고 있지만 질적으로는 갈등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연변일보의 한 기자는 엊그제 필자에게 "요즘엔 중국 각지에서 산업이 많이 발전됐다. 그곳에 취직하면 월급도 남한과 비슷하게 받는다. 남한에선 허드렛일하고 괄시받는데 구태여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했다.

#3

'선진화'를 주창해온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이 통일 이슈에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였다. "스탠퍼드대에 있을 때 '북핵 문제를 중국에 맡기자. 주한미군도 필요하면 철수하자'는 미국 측 연구보고서를 봤다. 한반도 분단을 미국이 중국과 잘 관리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가 멍청하게 있다가는 분단이 고착화·영구화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이사장은 돌아와서 국내외 세미나를 잇달아 열며 통일을 외치기 시작했고 책도 펴냈다. 2013년 헤리티지재단과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중국의 전직 장성이 귀국 후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남한이 통일에 대해 적극적인지 몰랐다'는 취지였다. 박 이사장은 "일본 니가타현립대의 이노구치 총장이 지난달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한국이 통일을 정말 하겠다는 건지, 그냥 했으면 좋겠다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고 말한 게 뼈아프게 느껴졌다"고 했다.

#4

남북한이 아직 통일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에서 통일을 바라는 힘(의식+제도)의 총합보다 통일을 바라지 않는 힘의 총합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은 왕정(王政) 유지에 급급하고, 북한 주민들은 공포에 짓눌려 다른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 주변 4강국은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우리가 한반도 통일을 앞장서 돕기에는 다른 할 일이 많다.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라"는 식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지난달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8%는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통일 준비가 잘돼 있다'는 응답은 15.6%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박채원 학생, 곽승지 교수, 박세일 이사장 같은 사람들이 통일의 불씨를 지피고 있어 다행이다. 중국 학자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를 금기시했으나 요즘엔 통일을 수긍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있다. 미국 일각에서도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알게 모르게 노력해 온 사람들 공(功)일 것이다.

역사는 우연을 허용치 않는다. 꿈이 있는 민족이 개척해 나가는 게 역사다. 우리가 통일이란 꿈을 위해 작은 실천을 모아 나가면 한반도에서 저물고 있는 마지막 냉전(冷戰) 게임의 무게추가 반(反)통일에서 통일 쪽으로 서서히 기울게 될 것이다. 나눔이 통일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