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덕의 종횡무진 인문학] "발해는 우리땅" 외치는 한민족… 이젠 북동 유라시아 세계史 살펴보라

조선일보
  •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입력 2015.07.18 03:00

강인욱 '춤추는 발해인'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오늘날 사어(死語)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만주어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에서 배운 적이 있다. 임진왜란을 연구하기 위해 고전 일본어를 공부했으니 병자호란을 연구하려면 만주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유라시아 고고학 연구자인 강인욱 선생이 필자에게 이렇게 조언한 바 있다.

청나라 때부터 러시아인들이 집필한 만주어 문헌들이 시베리아 각지에 방대하게 존재하는데, 현재 러시아의 동방학 연구가 활발하지 않으니 언젠가 이 문헌들을 연구해보라고. 1689년에 청나라와 러시아가 맺은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중국어 대신 만주어·러시아어·라틴어로 국서가 집필되었고, 러시아와 일본 간의 무역을 제안하며 1804년에 일본 나가사키에 입항한 러시아 사절 레자노프 역시 중국어 대신 만주어·러시아어·일본어로 국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뒤였다.

만주어에 이어서 지난해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일본학으로 시작한 필자의 연구는 강인욱 선생이라는 선학(先學)에 힘입어 크게 넓어졌다고 하겠다.

강인욱 '춤추는 발해인'
북동 유라시아 대륙에는 말갈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족이 살아왔다. 한족(漢族)과 한민족(韓民族)만의 무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시베리아·연해주 지역의 고고학 연구에서 획득한 통찰로 가득한 책 '춤추는 발해인'(주류성)에서 강인욱 선생은, 소수의 발해인과 다수의 말갈인이 함께 만든 다민족국가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데에만 온 정신을 쏟는 현대 한국의 시민에게 이제는 거시적 관점에서 북동 유라시아 세계를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세계적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한반도 남쪽 일부에 갇혀서 시선을 세계로 넓히지 못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일갈한다. "경제적으로 거대하게 성장해가고 있는 한국이지만 최소한 고대사와 고고학에 대한 인식만큼은 남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85쪽)고.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를 밝히고자 한다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유라시아 대륙에서 연구하는 것이 정석이다. 시베리아 한복판에 자리한 도시 노보시비르스크의 러시아과학원 고고민족학연구소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시베리아와 연해주의 발굴 현장을 누빈 강인욱 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연구자다. 연구자의 진면목은 전공서적에서 드러나는 법이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이런 교양서가 반갑다. 이 책의 제2탄이 올여름에 출간된다고 하니 그때까지 강인욱 선생의 블로그 '강가딘의 북방기행'(http://blog.naver.com/kanginuk)을 읽으며 갈증을 달래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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