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출판사 대표 30인이 뽑은 '숨어있는 최고의 책'

소박하지만 속은 꽉 찬 58권의 책, 휴가철 재충전하러 떠나는 길에 한 권 챙겨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여러분들에게 명망 있는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자 30인이 선정한 '숨어있는 최고의 책'을 권해드립니다.

    입력 : 2015.07.18 06:00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은 아니다. 조선일보 북스팀은 명망 있는 출판사 대표 및 편집자 30명에게 최근 3년간 출간된 도서 중 크게 주목받지 못했더라도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을 꼽아달라고 주문했다. 자기 출판사와 남의 출판사에서 낸 책을 각각 한 권씩 추천해달라고 했다. 모두 58권의 목록<표>이 접수됐다. 복수로 꼽힌 책은 단 두 권이었다.

    다시 30명에게 이 목록 중에서 이전 추천한 책 외에 3권씩 더 꼽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을 통해 ‘숨어 있는 최고의 책’으로 꼽힌 책은 30명 중 10명이 선택한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더숲).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자본 논리, 시스템을 거스르는 시골 빵집의 혁명적 기록. 소박하고 경이롭다”며 이 책을 꼽았다. 이어 8명이 선택한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까치), 7명이 꼽은 ‘빅데이터 인문학: 진격의 서막’(사계절)이 ‘톱 3’에 들었다. ‘희망의 발견’을 낸 박종만 까치 대표는 “설원의 호수를 향해서 열린 창문 하나를 찾아가는 한 ‘은둔자’의 기록”이라며 일독을 권했다. 강맑실 사계절 대표는 “클릭 한 번으로 800만권을 읽는 디지털 시대의 인문학을 위한 빅데이터 사용 설명서”라고 ‘빅데이터 인문학’을 소개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는 6명이 꼽아 4위에 올랐다. 박윤우 부키 대표는 “노년과 죽음에 대한 건강하고 건설적인 논의의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했다. 
    책을 만드는 출판인은 책을 고르는 개성이 강한 이들이다. 처음 30명이 꼽은 책 중 복수로 꼽힌 두 권은 ‘인포그래픽 세계사’(민음사)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어크로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세상을 움직이는 커다란 흐름에 대한 통찰”,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지금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 여름휴가를 앞두고 나의 일과 삶의 중간 점검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했다.
    출판사 대표들이 꼽은 58권은 책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꼽은 ‘숨어 있는 최고의 책’ 리스트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18일부터 이 책들을 따로 전시 판매하는 기획전을 연다.

    '버터' 대신 '효모'... 자본주의를 넘어선 빵집 이야기
    삶의 기쁨을 누렸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그 기쁨의 뿌리가 ‘돈’에서 비롯된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의 기원은 대개 뜻밖의 선물 같은 인연의 힘에서 시작된다. 내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러 와주신 분들이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손편지를 수줍은 듯 전해주고 가실 때, 주소도 연락처도 없는 그 ‘일방적 선물’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작가야말로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엄마의 집밥은 어떤가. 요리에 젬병인 나는 대충 끼니를 때우는 데 익숙해져버려 엄마의 집밥, 또는 마음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담은 음식을 먹으면 가슴이 찡해진다. 이 행복은 도저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바로 이런 기쁨이 교환가치로 환원될 수 없는 사용가치다.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바로 이런 행복의 기원, 즉 자본으로 계산될 수 없는 행복의 가치를 창조하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오랜 백수 생활 끝 나이 서른에 뒤늦게 취직하여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다니던 와타나베 이타루. 그는 언젠가는 농촌에서 소박하고 정직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겠다는 꿈을 품어왔지만, 막상 그 농산물을 취급하는 회사가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한다.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꿈꾸던 그는 버터와 설탕과 계란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천연 효모만으로 빵을 만드는 기술을 연마한 끝에 마침내 시골 빵집 ‘다루마루’를 차린다. 그는 시골의 오래된 고택에서 채취한 천연 곰팡이를 자연발효시켜 빵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 잊을 수 없는 향기로운 빵 맛에 중독된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으로, 그는 ‘이윤을 남기지 않고도 결코 망하지 않는 회사’라는 마법 같은 신화를 창조해냈다. 
    이 책을 읽으며 학창 시절 고(故) 정운영 선생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수업을 21세기의 언어로 다시 듣는 느낌이었다. 학생들에게 ‘마경’이라는 약어로 불린 그 수업은 나에게는 ‘마법의 경제학’이었다. ‘마경’을 들은 지 벌써 10여년이 넘었지만, 내게 마법의 경제학은 바로 ‘엄혹한 자본주의적 시스템 내부에서도 그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실천하고, 그 실천의 비법을 조건 없이 공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다. 이 신기한 시골 빵집의 주인은 ‘천연 효모’라는 이야기의 씨앗 하나로 ‘자본주의적 세계 내부에서 그 바깥을 상상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

    영하 30도의 바이칼 호수... 은둔하는 삶의 미학을 기록하다
    ‘전원교향곡’을 들으며 3시간 동안 스케이트를 타고, 곤들매기 한 마리를 낚시로 잡은 뒤 차를 마시며 호수를 바라보다 햇볕을 쬐면서 조금 잔다. 3m 길이 통나무를 쪼개 이틀치 장작을 마련한 뒤 러시아 음식 카차를 따끈하게 만들어 먹는다. 2010년 4월 4일 프랑스 작가 실뱅 테송(1972년생)의 하루다. 그가 시베리아 동남부 바이칼 호반 오두막에서 그해 2월 9일부터 7월 28일까지 매일 적어 내려간 은둔 일기가 ‘희망의 발견: 시베리아의 숲에서’이다.
    ‘바깥은 정오이다. 하늘이 침엽수림에 하얀 가루를 뿌려놓았다. 갓 내린 눈이 삼나무의 짙은 녹색을 보드랍게 감싸고 있다. 겨울 숲은 굽이치는 대지의 어깨들에 걸쳐진 은빛 모피이다. 식물의 물결이 비탈을 덮고 있다. 온 세상을 점령해버리려는 이 나무들의 의지, 숲은 천천히 넘실대는 물결이다.’(2월 16일)
    왜 바이칼호의 오두막인가? ‘내적 자유의 감정에 도달하려면 풍부한 공간과 고독이 필요하다. 또 거기서 시간의 제어, 완전한 침묵, 거칠고도 고된 삶, 그리고 장엄한 지리적 환경을 덧붙여야 한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나는 오두막으로 왔다.’ 곰이 출몰하고 영하 30도 아래가 다반사이며 가까운 마을이 100㎞ 바깥인 오두막에서 테송의 일과는 장작 패고 카누 타고 물고기 잡고 책 읽고 등산하며 보드카를 마시는 것이다.
    6월 16일에는 아내가 ‘부평초같이 떠도는 남자를 더 이상 원치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해왔다. 탈진할 때까지 책도 읽고 혈관이 초토화되도록 술도 마셔보지만 고통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 달여 뒤 오두막을 떠날 즈음 남자는 이별의 고통이 ‘하나의 완전한 삶으로서의 여섯 달’ 중 일부였음을 받아들이고 ‘당장의 순간이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지혜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교훈을 펼치는 책도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책도 아니다. 교훈에 지치고 막장을 넘나드는 각종 이야기에 물린 사람에게 이 책은 휴식 그 자체가 될 것이다. 테송에게 오두막은 ‘자유와 침묵과 고독에 대한 욕구들을 올려놓는 일종의 실험대, 하나의 느린 삶이 발명되는 실험의 장, 간소함의 기반 위에 하나의 삶을 세우기 위한 완벽한 장소’였다. 채우기보다 비우려 한다면, 더하기보다 덜어내고 싶다면 바이칼호라는 배경 하나만으로도 ‘납량 특집’ 구실까지 겸하는 이 책 속으로 떠나보자. (표정훈 한양대 특임교수)

    '여름휴가'는 비인기 검색어? 빅데이터로 보는 현대인의 흔적
    검색창에 여름휴가(summer vacation)라고 쳐 넣는다. 잠시 후 그래프 하나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래프에 따르면, 19세기 초엔 여름휴가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1880년 무렵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한다. 산업화 덕분에 생긴 삶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라는 말의 사용은 1915년부터 1941년까지 25년 동안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현재까지 역력한 하강세를 보인다. 산업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동시에 몰려서 여름휴가를 떠나는 일이 줄었기 때문일 것이다.
    휴가(vacation)는 어떨까? 이 말 역시 19세기부터 조금씩 사용이 늘어나다가 여름휴가와 똑같이 1941년에 이르러 절정을 맞이한다. 그러나 휴가라는 말은 여름휴가와 달리 1960년대 중반 이래로 다시 힘을 회복한 후 기울기가 꽤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준다. 현대인들은 여름휴가가 아니라 휴가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이는 ‘빅데이터 인문학’의 저자들을 흉내 내 본 것이다. 전 세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모조리 디지털화해서 검색 소스로 제공하겠다고 구글이 선포한 것이 2002년이다. 그사이 구글은 3000만권 이상의 서적을 디지털화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젊은 두 과학자 에레즈 에이든과 장바티스트 미셸은 구글의 디지털 서적 데이터를 이용해서 인간 삶을 읽어내는 ‘데이터 인문학’을 제안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책은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 문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은 초상화를 제공한다.” 검색로봇 엔그램(Ngram)의 도움을 받아 두 사람은 그중 800만권에 이르는 책들을 순식간에 읽어 들인 후 단어들의 장기 역사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이로써 이 그래프는 “인류가 남긴 문화적 기록에 대한 전대미문의 요약”이 된다.
    인문학은 사실 호모사피엔스가 남긴 온갖 데이터 흔적들을 쫓아가면서 그 의미를 해독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인류가 남긴 거의 모든 기록이 담긴 거대한 데이터를 자유로이 읽어가면서 인간 삶의 온갖 흔적을 추적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저자들은 “빅데이터는 우리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친숙한 창일 수 있다. 수량화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빅데이터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인간 삶의 드라마를 힘찬 그래프와 함께 보여준다. 책들이 모여 거대한 안개를 이루었는데, 바라볼 때마다 흩어졌다 모이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신선하고 때로는 신비롭다. 부제처럼 빅데이터 인문학은 이제 진격의 서막을 열었을 뿐이다. 이 새로운 학문이 곤경에 빠진 인문학의 훌륭한 탈출구가 되어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장은수 순천향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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