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기념식서 皇軍歌 '감격시대'를 연주하다니…"

조선일보
  • 한현우 기자
    입력 2015.07.15 03:00 | 수정 2015.08.03 16:17

    첫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 낸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

    강연을 토대로 첫 책을 펴낸 강헌은“썼던 글을 엮어낸 책에 대한 독자로서의 혐오감 때문에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위 사진은 강헌이‘사상 세번째 명 재킷’으로 꼽은‘신중현과 엽전들’2집.
    강연을 토대로 첫 책을 펴낸 강헌은“썼던 글을 엮어낸 책에 대한 독자로서의 혐오감 때문에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위 사진은 강헌이‘사상 세번째 명 재킷’으로 꼽은‘신중현과 엽전들’2집. /고운호 객원기자
    '신중현과 엽전들'이 '미인'으로 대박을 터뜨린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그에게 '국민가요' 작곡을 의뢰했으나 거절당했다. 신중현은 그 뒤 희한한 음반을 발매했다. '신중현과 엽전들' 2집이다. 이 앨범 재킷 사진은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신중현과 이남이, 권용남 세 멤버가 양복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다. 음반에는 '아름다운 강산' 외에 '지키자' '뭉치자' '어깨 나란히' 같은 노래들이 실렸다. 누가 봐도 '잘못했습니다'가 이 음반의 콘셉트다.

    대중음악 평론가 강헌(53)은 이 앨범 재킷을 '한국 대중음악 사상 세 번째 명 재킷'으로 칭했다. 그는 최근 펴낸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돌베개)'에서 "내가 만일 미셸 푸코였다면 이 재킷 사진으로 책 한 권을 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명 재킷 1위'로 한대수 2집 '고무신'을 꼽았다.

    이 책은 한국 대중음악 평론의 독보적 존재이자 화려무쌍한 글과 말의 소유자 강헌이 처음 펴낸 책이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는 그간 책을 쓰지 않은 데 대해 "일단 의지박약"이라고 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100% 공감할 말이다. 그는 "짧은 글을 빨리 쓰는 건 자신 있지만 1000장 넘는 글은 내 체질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2013년 여름 대학로 카페 '벙커1'에서 그가 했던 강의를 토대로 책을 엮었다. 재즈와 로큰롤의 탄생, 한국에서의 통기타 혁명과 그룹사운드의 등장, 평생 비정규직이었던 모차르트와 베토벤, '사의 찬미' 윤심덕과 트로트의 주류 대중음악화라는 주제로 4장에 걸쳐 썼다. "어렵게 쓰고 말하는 학자들을 경멸한다"는 강헌은 "신문기사처럼 중학교 2학년이 읽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고 했다. "한국에서 블루스는 교미의 전초전용 음악으로 오해됐다"든가 "베토벤은 역사상 최초의 로커" 같은 강헌식 표현이 그 재미를 배가한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허물던 1995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교향악단이 '감격시대'를 연주한 이야기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하다. '감격시대'는 광복의 기쁨이 아니라 황군을 격려하는 노래로 1939년 발표됐기 때문이다. 이 노래 2절은 "희망봉은 멀지 않다/ 행운의 뱃길아"로 끝난다. 여기서 희망봉은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희망봉이다. 이 노래를 중앙청 건물을 허물 때 연주했으나 아무도 문책당하지 않았다.

    윤심덕의 현해탄 동반자살 사건에 대해 강헌은 음모 이론을 설파한다. 축음기를 팔아먹기 위한 일본 회사의 '기획 작품'이라는 것이다. 음악과 시대와 사회를 사실관계로 꿰뚫어보는 평론가의 역할이 이 장(章)에서 빛난다.

    이 밖에도 책은 '쎄시봉' 시절 조영남이 송창식을 화장실에서 패준 이야기, 왜 꽃미남이 아닌 조용필·이문세·변진섭이 최초의 '오빠들'이 됐는지, 비틀스가 미국에 진출할 때 왜 양복 차림이었는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350쪽 넘게 이어진다.

    "음악 미학적으로는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K팝의 성공에 대해 강헌은 말한다. "자메이카의 레게가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것은 영미권의 대형 음반사 덕분이었다. K팝은 지구적 커뮤니케이션 체제가 갖춰진 뒤 인터넷을 통해 첫 번째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 성공 사례이며 수혜자다."

    이미 3회까지 강의한 강헌은 올가을 네 번째 강의를 연다. 이 강의들을 모두 책으로 낼 계획이라고 했다. 강헌은 "놀라운 끈기와 참을성을 가진 편집자 덕분에 책을 냈고 앞으로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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