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무티 리더십', 치프라스의 벼랑끝 전술 눌렀다

입력 2015.07.14 03:00

[그리스 협상 타결]

"적당히 타협하라"는 오바마도, 올랑드도 48시간 마라톤 협상 이끈 그녀 못말려
치프라스의 국민투표로 수세 몰렸지만 "빚은 스스로 갚아라"며 오히려 정면돌파

지난 5일(현지 시각) 그리스 아테네의 중심 신타그마광장. 채권단 구제금융안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반대 결과'가 확실해지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48시간 안에 채권단과 긴축 완화 협상을 성공시키겠다"며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국민투표를 통해 채권단과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그의 '벼랑 끝 전술'이 성공하는 듯했다.

우울한 그리스 - 13일(현지 시각) 그리스 아테네 중심가에서 휠체어 탄 노인이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은행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날 국제 채권단과 그리스 사이에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그리스는 3차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은행 영업 재개까지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울한 그리스 - 13일(현지 시각) 그리스 아테네 중심가에서 휠체어 탄 노인이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은행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날 국제 채권단과 그리스 사이에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그리스는 3차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은행 영업 재개까지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AP 뉴시스
비슷한 시각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긴급 회담을 제의했다. 7일 소집된 유로존 정상회의에 앞서 치프라스에게 우호적인 올랑드와 먼저 그리스 사태 해법을 조율할 생각이었다. 형세는 메르켈에게 불리해 보였다. 그리스 국민을 향해 '찬성'을 독려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렉시트 가능성이 커질수록 '잃을 것' 많은 독일이 더 초조해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 예상이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당시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메르켈의 협상 스타일이 '끝까지 가보자'는 치프라스에겐 먹히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메르켈이 결국 그리스 부채 일부를 탕감해주는 대신 그리스에 긴축정책을 요구하며 협상을 끝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7일 유로존 정상회의에 나타난 메르켈은 "그리스 부채 탕감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리스 부채는 스스로 상환해야 한다'는 원칙을 위해 협상 카드를 스스로 포기하며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메르켈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한 건 그리스'라는 치프라스의 약점을 간파했다. 치프라스는 지난 1월 집권 후 명시적으로 '그렉시트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에 따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은행 영업정지로 인한 그리스 경제 혼란도 견디기 힘들었다.

치프라스는 기존 채권단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3차 구제금융안을 지난 9일 채권단에 제시했다. 이번에도 대부분 메르켈이 이를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협상할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11일 협상 테이블에 이전보다 훨씬 가혹한 긴축안을 올려놓았다. 그리스 국유 자산을 독립 펀드로 넘기고, 구제금융 제공 전에 연금·세제 개혁에 관한 개혁 입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그리스에 재정 주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도했다.

메르켈이 이런 선택을 한 것은 과거 경험 때문이다. 메르켈은 2010년 이후 1·2차 구제금융을 통해 그리스에 약 2300억유로(약 290조원)를 지원했지만 정부 부채는 오히려 늘었다. 그리스가 약속한 긴축정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서, 경제개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구제금융을 통해 그리스 경제를 확실히 바꾸겠다는 게 메르켈의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채권단이 그리스의 경제성장을 위해 350억유로(약 44조원) 투자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협상이 지연되면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은 "그렉시트의 파국은 막아야 한다"며 메르켈에게 타협을 종용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와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저명 학자들도 메르켈에게 편지를 보내 '부채 탕감과 협상 타결'을 주문했다. 메르켈의 이번 최종 협상안에 대해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등은 "치프라스를 쫓아내려는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내렸다. 하지만 메르켈은 끝내 이런 비판을 견뎌내며 자신의 뜻대로 협상을 관철했다.

13일 메르켈은 협상장을 나서며 "그리스는 약속한 계획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며 "앞으로 갈 길이 멀고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메르켈이 이번 협상의 1차적 승자이지만, 개혁에 성공한다면 그리스가 궁극적 승자가 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EU 정상회의 사상 가장 긴 협상을 끝낸 메르켈은 곧장 베를린으로 날아가 그리스 구제금융에 비판적인 독일 여론 설득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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