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자신의 부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지난 1월 다보스 포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구제금융 협상 과정에서 대화와 긴축 카드를 번갈아 꺼내 들며 강온(强穩)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는 원칙만은 한결같이 유지했다.
메르켈은 이번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 17시간, 지난 11일 재무장관회의를 포함하면 약 48시간의 마라톤협상에서도 이 입장을 고수했다. 난산(難産) 끝에 나온 그리스 3차 구제금융안은 결국 메르켈의 강인하고 뚝심 있는 '무티(Mutti·독일어로 엄마) 리더십'이 치프라스의 '벼랑 끝 전술'에 승리한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로존은 13일 오전(현지 시각) 끝난 정상회담에서 500억유로(약 60조원) 상당의 그리스 국유 자산을 새로 만들 독립 펀드로 옮기고, 이 자산을 매각하거나 운용해서 나오는 수익으로 정부 부채를 갚고 은행 자본금을 확충하기로 합의했다. 또 부가가치세(VAT) 인상과 연금 삭감을 추진하고, 오는 15일까지 그리스 의회 승인을 받기로 했다. 노동시장과 행정·사법기관 개혁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그 대가로 채권단은 그리스에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통해 3년 동안 820억~860억유로(약 103조~108조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의장은 "유로존 정상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며 "그렉시트는 없다"고 말했다.
이제 세계경제의 걸림돌이었던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변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리스는 유로존에 잔류하는 대가로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부결시켰던 채권단의 기존 구제금융안보다 더욱 혹독한 긴축정책을 수행하게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EU 관리를 인용해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겐) '정신적 물고문'만큼 가혹한 내용"이라고 보도했다. 치프라스는 "그리스가 두 발로 일어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제금융 기간에 경제 개혁에 실패한다면 그리스는 '4차 구제금융'과 그렉시트의 갈림길에 다시 서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