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금메달 딴 후… 베를린 두부공장서 축하파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제 치하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마라톤 선수로 출전해야했던 손기정.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일본에서 마련한 장소를 뒤로한 채 독일에 있던 조선인 두부공장에서 연 축하모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중근 의사가 운영하던 그 공장에서 손기정은 "벽에 걸린 태극기를 보니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고 말했다.
세월이 흘러 손기정 옹의 외손자 이준승씨가 당시 손 옹이 베를린에서 찍은 사진과 몸을 실었던 국제열차표를 공개했다.

손기정 금메달 딴 후… 베를린 두부공장서 축하파티

입력 2015.07.13 22:00 | 수정 2015.07.14 16:34

손기정 금메달 딴 후... 축하했던 장소는 따로 있었다

일제 시대인 1936년 독일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 동양 남자 10여명이 사발과 놋쇠 그릇에 김치와 두부를 놓고 '축승회(祝勝會)'를 열었다. 축승회였지만 분위기는 엄숙했다. 벽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손기정·남승룡 선수 일행이었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일본 선수단이 여는 축하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조선인들끼리 몰래 축승회를 가졌다. 축승회를 준비한 사람은 베를린에서 두부 공장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안봉근 선생이었다. 그는 안중근 선생의 사촌동생으로 베를린에 유학 와 독일 사람과 결혼했다.

손기정 선수는 그때 처음으로 태극기를 봤는데 당시 감동을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온몸에 뜨거운 전류가 흐르는 듯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탄압과 감시의 눈을 피해 태극기가 살아 있듯 조선 민족도 살아 있다는 확신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달려온 유학생 정석해씨는 손기정 선수의 손을 잡으며 “나는 손군이 단순한 운동선수라고만 생각지는 않네. 오늘 일본인들의 축하 파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를 나눈 동포들의 모임에 나와 주었으니 이야말로 애국지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인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은 13일 “최근 외할아버지가 일본 몰래 조선인들끼리 축승회를 열었던 그 두부 공장의 주소를 알게 됐다”며 “7월 말 ‘유라시아 친선 특급’을 타고 베를린을 방문하면 직접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건물은 옛 서베를린 중심가 인근의 칸트스트라세에 있는 6층 주상 복합 아파트로 이란망명자협회 사무실이 있다고 한다.

이 사무총장은 14일 외교부·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마련한 ‘유라시아 친선 특급’을 타고 베를린까지 간다. 7월 14일~8월 2일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가는 여정이다. 손기정 선수도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이 열차를 탔다. 당시엔 한반도와 유럽이 국제 철도로 연결돼 있어 서울에서 베를린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1936년 6월 4일 경성을 출발한 열차는 손기정 선수의 고향인 신의주와 만주, 시베리아,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17일 베를린에 도착했다. 꼬박 13일이 걸린 것이다.

손기정 선수가 탄 열차는 여객 열차가 아니라 군 장비를 수송하는 화물 열차였다. 손기정 선수는 이 열차에서 조선인들이 싸준 마늘 장아찌와 장조림을 먹으며 버텼다.


손기정 선수는 잡지 ‘삼천리’에 쓴 기고문에서 이 여정을 “가도 가도 넓고 큰 시베리아는 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곳 같은 광막한 평야뿐으로 조선의 경부선이나 경의선에서처럼 산이라고는 보려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또 “철도는 조선 것보다 몹시 넓은 선로로 규모도 컸으나 시간을 잘 지켜주지 않는 데는 기가 막혔다”며 “덕분에 열차가 30분씩 정차할 때마다 플랫폼에 내려 달리기 연습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소련에선 일본 간첩으로 오인받아 조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를린역에 도착한 손기정 선수는 환대를 받지 못했다. 마중 나온 일본 대사관 직원들은 “왜 마라톤에 조선인이 두 사람씩이나 끼었느냐”고 불만을 털어놨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는 “보름 가까이 열차에 시달리며 도착한 곳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첫인사를 받게 되다니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손기정 선수는 시합 당일을 빼곤 일장기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고 이 사무총장은 말했다."사람들이 '왜 유니폼을 입지 않느냐' '그러다 아예 출전을 못 하는 수가 있다'고 하자 외할아버지는 '내가 출전 못 하면 금메달은 없다'고 했답니다. 나중에 우승 못 하면 어쩔 뻔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럼 사상범으로 몰려 감옥 갔겠지'라고 하더라고요. 24세 청년이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일을 스스럼없이 했을까요. 일장기 말소 사건이 워낙 많이 알려지다 보니 정작 베를린에서의 외할아버지 행적은 묻혀 아쉽습니다." 
이 사무총장은 이번에 독일 올림픽위원회에 편지를 보내 베를린 주경기장에 있는 손기정 선수의 명패에 한국 국적을 함께 표기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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