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안보에는 껄끄러운 두 나라가 있다. 북한과 일본이다. 북한은 언젠가는 통합해야 할 대상이면서도 현재와 미래의 안보 위협이고, 일본은 동아시아의 파트너이면서도 과거사로 인한 질곡이 떠나지 않는다. 북한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일본이 얼마나 큰 나라인지 한국 사람만 모른다는 속설(俗說)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의 눈에는 둘 다 풀어볼 만한 숙제처럼 보인다는 게 아이러니다. 그러다 보니 강하게 압박을 가하면 상대가 움직일 것이다, 고립되면 상대가 바뀔 것이다, 그래도 안 바뀌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등 공세 전략의 부풀려진 기대들이 난무한다. 그래서인지 대북과 대일 전략에 쓰는 용어들이 비슷해졌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과 다른 나라에서 통용되는 전제들이 우리에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압력과 제재, 국제적 고립을 통해 체제의 어려움을 증가시키는 것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드는 길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북한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전략적 인내' 정책은 미국이나 중국으로서는 감내할 수 있는 정책이다. 설사 북한의 핵 능력이 지금보다 증가하더라도 미국이나 중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감당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중 양국에조차 고립과 압박이 북한의 체제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희망적 관측일 수 있고, 전략 부재 속의 외면에 그칠 수 있다. 지금 손쓸 수단이 마땅치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데다 신뢰할 수 없는 상대이니 그냥 기다려보자는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북한의 핵 포기를 가장 강하게 주장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한국에 실증적이고 가시적이며 치명적인 위협이다. 미·중·일이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도 인내심만 발휘하는 것은 한국이 주어(主語)가 되는 전략적 선택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관여 정책에 앞장서야 할 나라도 한국이다. 중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은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는 것이 특별히 불편할 게 없다. 하지만 한국에 북한은 통합해야 할 같은 민족의 나라다. 한국이 북한에 대해 억지 능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통합을 위한 관여를 늘려가야 하는 이유다.
일본에 대해서도 한국의 주체적 눈은 더 개발되어야 한다. 과거사의 흠집을 들추어내서 일본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 몰아세우기는 중국에 어울리는 전략이다. 한국이나 주변국을 일본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을 협력 대상이 아닌 갈등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국내정치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안보이익이나 경제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의 후방 지원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의 안보를 담보해주는 필요조건이다. 한·일 간 경제적 연계는 아직도 경합적 부분보다 보완적 측면이 강하다.
일본을 다루는 한국의 접근법은 미국과도 달라야 한다. 미국이 일본에 압력을 가하면 순응적으로 대응한다. 압력이 강해질수록 일본 내 미국 우호세력이 결집한다. 미국이 없이는 일본의 안보를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대일 압력을 강하게 행사하면 반한(反韓) 정서가 고개를 든다. 한국의 압력에는 굴복하기 싫어하는 반발심리가 일부 집단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우익을 한국에 대한 우호 세력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교한 전략의 구사가 요구된다. 한국은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뒷걸음질을 못 치도록 견제구를 날리면서도 미래를 향한 전략적 협력의 틀을 키워가야 한다.
북한과 일본을 다루는 전략은 협력 증진과 갈등 관리라는 복안(複眼)의 지혜를 요구한다. 껄끄러운 부분을 덜어내고 협력의 틀 창출을 통해 점진적 신뢰 구축과 장기적 화합의 길을 찾는 것이 현실적이다.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은 북한은 여전히 한국의 안보 위협이지만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직접적 위협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입력 2015.07.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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