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서 어린이집 두 곳을 운영하는 김모(48) 원장은 한 군데를 접기로 했다. 작년에는 두 어린이집 모두 정원 34명이 다 찼는데, 올해는 두 곳 모두 절반도 모집이 안 됐다. 김 원장은 "어린이집을 운영한 지 15년 됐지만, 올해 같은 불황은 처음"이라며 "선생님들에겐 미안하지만, 땅 파서 월급 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원주뿐 아니라, 올 들어 전국적으로 어린이집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만 0세부터 5세까지 유아들을 돌보는 어린이집은 1995년 9085곳에서 2013년 4만3770개까지, 약 20년간 그 수가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잠시 주춤하더니 올 들어 6개월 만에 764곳이 문을 닫았다. 어린이집 수가 처음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폐업 어린이집 속출
어린이집이 급격히 감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올 초 '어린이집 폭력 사태'와 정부와 시도 간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 보육)' 예산을 미루는 사태, 메르스 발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2012년 소득과 상관없이 영아(0~2세)와 만 5세 모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경우 비용을 지원하는 '무상 보육' 정책을 도입했다. 2012년엔 출생아 수(48만4550명)도 전년 대비 1만3000명이나 늘어났다. 그러자 2012~2013년 사이에 어린이집이 4000개 가까이 급증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정책 때문에 가정에서 돌봄을 받아야 할 영아들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는 일이 발생하자, 정부가 이듬해 소득에 상관없이 가정에서 아이를 돌볼 경우에 지급하는 '양육 수당'을 도입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 대신 양육 수당을 택하는 엄마들이 나타났고, 어린이집 가운데에서도 영아를 주로 전담하는 '가정어린이집'들이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폭력 사태 등 영향
그러는 와중에 지난 1월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교사가 네 살배기 어린이를 심하게 폭행하는 CCTV 장면이 인터넷을 통해 번지면서, '어린이집 폭력'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부산에 사는 주부 김모(34)씨는 "온종일 애 보기가 힘들어 두 살짜리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냈었는데, 어린이집 교사가 어린아이를 주먹으로 때리는 장면을 보고 너무 소름끼쳐서 어린이집을 그만뒀다"며 "믿을 수 있는 어린이집에 자리가 날 때까지는 내가 집에 데리고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옥심 한국가정어린이집연합회장은 "양육 수당 도입으로 원아 모집이 줄어 힘들어하는 와중에 폭력 사태까지 발생해 어린이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났다"며 "그렇지 않아도 경영난에 허덕이던 가정어린이집 원장 중에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느니 그만두자'는 생각에 폐업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 대비 올해 국공립 어린이집과 직장 어린이집은 50~70개씩 늘어난 반면, 가정어린이집은 700개 이상 감소했다.
작년 연말부터 올 3월까지 정부와 시도교육청, 지자체 간 서로 '누리 과정'(만 3~5세 무상 보육) 예산 부담을 미루는 사태도 어린이집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있다.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은 "아이들 입학 시즌인 3월에 시도교육청들이 '어린이집은 우리 관할이 아니라서 누리 과정 예산 편성을 못 하겠다'고 하니까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에 신뢰를 잃고 유치원을 선택한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문희 연구위원은 "출산율이 다시 떨어지고, 아동 학대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가 겹치면서 규모가 작은 가정어린이집 등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무상 보육 도입으로 어린이집들이 과도하게 많아진 상황에서 어린이집 대신 가정에서 돌봄을 받는 영아가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