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강북구 숭인로'와 '미아리'의 차이

    입력 : 2015.07.10 03:00

    한현우 문화부 차장
    한현우 문화부 차장
    우리 집의 행정구역상 주소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이지만 나는 "미아리에 산다"고 말한다. 행정구역 동명(洞名)은 1949년에 붙여졌으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동네를 미아리라고 부른다. 조선 초기부터 그렇게 불러왔기 때문이다. 왕십리동이나 청량리동 대신 여전히 왕십리와 청량리로 부르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미아리엔 공동묘지가 있었고, 1950년대 서울 빈민들의 첫 달동네였으며, 속칭 '미아리 텍사스'도 있어서 신흥 베드타운이 된 후에도 여전히 그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다. "미아리에 산다"고 하면 듣는 쪽이 미안해하는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왜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왜요'라니? 미아리에 집이 있어서 거기 산다). 강남의 호프집에서 대리기사를 불렀는데 기사가 문을 열고 "미아리 가시는 분!" 하고 소리치자 모든 손님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누가 미아리에서 여기까지 왔나' 하는 얼굴이었다.

    작년부터 시행된 도로명 주소 덕분에 그 이미지를 좀 벗나 싶었다. 우리 집의 새 주소는 '강북구 숭인로 ○○ ×동 ×호'다. 어디에도 묘지나 달동네, 텍사스의 흔적이 없다. 하지만 이 주소가 시행된 지 1년 반이 지났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 동네를 미아리라고 부른다. 새 주소 체계가 과연 정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이유가 거기 있다.

    '서울 영등포구 63로 10'에는 대형 병원이 하나 있다. 이 주소로는 대관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옛 주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2'다. 여의도성모병원이다. 새 주소 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소만으로는 어디쯤인지 짐작할 수 없는 길 이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사적(史跡)이나 민담(民譚)에 따라붙었던 동명이 대거 사라진 것도 문제다. 조선 시대 소격서(昭格署)가 있던 소격동은 사라지고 율곡로만 남았다. 기왕이면 소격로라고 이름 붙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문화' '희망' '평화'처럼 개성 없는 길 이름이 넘친다.

    동사무소에서 민원서류를 떼는데 현주소를 도로명 주소로 쓰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괄호 열고 '미아동, ○○아파트'까지 쓰라고 했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사람들이 새 주소에 익숙지 않아서 그렇게 병기토록 하고 있다"며 "한시적으로 병기할지, 계속 병기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옛 주소의 번지수가 바뀌고 도로명이 추가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시중에 '미국 연수 다녀온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아이디어를 내서 세금 낭비했다'는 음모론이 돌 정도다. 미국 주소 체계는 기본적으로 번지와 도로명, 시(市), 주(州), 우편번호로 구성돼 있지만 이 밖에도 카운티(county), 보로(borough), 타운(town), 타운십(township), 빌리지(village)로 다양하게 행정구역이 나뉜다. 뉴욕 맨해튼은 뉴욕주 뉴욕시의 5개 보로 중 하나이고, 첼시나 할렘은 빌리지인 식이다. 뉴요커조차도 '컨벤트 애비뉴'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할렘에 있다고 하면 대충 위치를 짐작한다.

    8월 1일부터 6자리이던 우편번호가 5자리로 바뀐다. 도로명 주소와 새 우편번호 모두 이전보다 더 과학적이고 쉽고 편리하다는 설명이다. 과학적이라니 그런가 보다 하지만 쉽고 편리한지는 모르겠다. '미아리'라는 이름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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