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143] 빨리빨리 아무것도 안 하는 대한민국

조선일보
  •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5.07.09 03:00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독일 속담에 'Eile mit Weile(아일레 미트 바일레)'라는 말이 있다. '천천히(Weile) 서두르라(Eile)'는 모순어다. 속담의 원조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있다. 로마 역사학자 수에토니우스(Suetonius)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그 무엇보다 서두르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중요한 전투 전에 그는 군인들에게 항상 그리스어로 "speude bradeos(빨리 천천히)!" 라는 지침을 내렸고, 같은 뜻의 라틴어 속담(festina lente)이 추후 황제의 좌우명이 됐다고 한다. 빨리 할 거면 빨리 하고, 천천히 할 거면 천천히 하지, 도대체 '빨리 천천히'는 무슨 의미일까?

    OECD 국가 중 근무시간은 가장 길지만 막상 생산력은 최하위권인 나라. 국영수 교과서가 낡도록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저녁마다 대치동 학원에 모여 공부하는데 세계적인 수학자 한 명 없는 나라. '스티브 잡스 만들기' '마크 저커버그 만들기' '일론 머스크 만들기'라는 거창한 이름의 프로그램은 많지만 글로벌 수준의 혁신가는 여전히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 모든 단어 앞에 '창조'라는 말이 들어 있지만, 남들과 조금이라도 다르고 창조적이면 안티와 악플만 늘어나는 나라. 우리 모두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대한민국 이야기다.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성공 비밀은 신중하고 충분한 계획을 기반으로 한 서두름, 바로 'Eile mit Weile'였다. 물론 남들보다 200년 늦게 산업혁명을 시작한 우리였기에 '빨리빨리' '대충대충' '얼추얼추'는 어쩌면 필연이었을 수 있다. 역사적 니즈와 팩트를 무시하자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이 무조건 '빨리빨리'와 '열심히'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는 아우구스투스의 조언과는 반대로 'Weile mit Eile', 그러니까 빨리빨리 그 아무 실질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가장 큰 적은 더 이상 '양놈도', '왜놈도', '빨갱이'도 아니다. 이제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우리 자신들이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