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차로는 비워둡시다 下

원칙 없는 '정글' 된 도로…3가지만 지키면 된다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도 않고 거의 지켜지지도 않는 지정차로제. 복잡해 보이는 지정차로제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추월 후 즉시 원래 차로로 복귀하기, 추월은 반드시 왼쪽 차선으로 하기, 왼쪽 차로보다는 느리게, 오른쪽보다는 빠르게 주행하기'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리고, 단속하고, 처벌해야만 교통무지(無知)로 인한 악재를 막을 수 있다.

  •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5.07.08 22:40

    ‘추월의 원칙’ 서로 알리고 지켜야 사고가 줄어든다
    원칙 없는 도로는 정글이었다. 본지 취재팀이 지난 1일 돌아본 고속도로에선 좌우 차로를 가리지 않고 추월하는 차량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다수가 ‘1차로는 추월차로’란 원칙을 지키지 않자 운전자끼리 서로 믿지 못해 모두 위반하고 모두 ‘방어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도로·교통 기반은 매우 뛰어난 편”이라며 “원칙만 바로 세워도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가 건널목을 건널 때 손을 번쩍 드는 것만으로도 교통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듯 지정차로제만 지켜도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운전자의 의식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손을 들고 길을 건너라’고 배우지만 어른들은 추월의 원칙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지난 3~4일 실시한 본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지정차로제에 대해 ‘주변에서 들어 본 것 같다’고 답했고, 18%는 ‘이번 설문조사에 응하며 알게 됐다’고 했다. 운전자들 의식만 탓할 게 아니라 교통 당국의 교육과 홍보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통경찰을 늘리고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2년 22만2656건에서 2013년 21만5354건, 2014년 22만3552건으로 큰 변동이 없는 반면 교통경찰관 수는 2011년 9916명에서 2012년 9615명, 2013년 9377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지정차로제 정착 문제와 관련해 경찰청은 8일 지정차로제 준수를 ‘집중 단속 항목’으로 선정하고 올여름 휴가철부터 단속과 홍보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이 운영하는 ‘스마트 국민 제보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제보도 단속에 활용할 방침”이라 했다. 지나치게 쉬워 오히려 ‘교통 무지(無知)’를 조장한다는 평을 들어온 운전면허 시험도 손보겠다고 경찰청은 밝혔다.
    /김충령 기자

    지정차로제 3대 원칙

    1) 추월은 왼쪽 차로로
    2) 즉시 원래 차로로 복귀
    3) 오른쪽 차로보다 빠르게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거의 지켜지지 않는 지정차로제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지정차로제가 유명무실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간단한 원칙조차 배워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본지가 인터뷰한 도로교통공단,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한국교통연구원의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지켜야 할 ‘지정차로제 3대 원칙’으로 △추월 후 즉시 원래 차로로 복귀하기 △추월은 반드시 왼쪽 차선으로 하기 △왼쪽 차로보다는 느리게, 오른쪽보다는 빠르게 주행하기를 꼽았다.
    도로교통공단 김진형 교수는 “대부분의 교통 선진국에는 운전자가 도로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금언(金言)이 있다”며 “우리도 간단명료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가르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좌측 차로로는 빠르게 주행하고, 우측 차로로는 좌측 차로보다 천천히 달린다’는 원칙이 있다.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규칙이기에 독일 운전자들은 처음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이 원칙을 숙지한다는 것이다. 영국에는 ‘추월 차로는 화장실’이란 얘기가 있다. 볼일을 보고 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지, 오래 머무르는 곳이 아니다는 뜻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장택영 박사는 “미국에선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서부터 운전 과목을 가르친다”며 “전체 가구 중 60% 이상이 자동차를 보유한 한국도 학교에서부터 운전의 기초 원칙을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한국의 도로·교통 인프라가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교통질서와 안전에 대한 시민 의식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 지체’ 현상이 우리가 도로에서 목격하는 각종 무질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박천수 책임연구원은 지정차로제와 더불어 회전교차로(로터리), 비보호 좌회전 운행에서의 무질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박 연구원은 “회전교차로에선 교차로 내에 먼저 진입한 차량에 우선 통행권이 주어진다는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훌륭한 제도를 도입하고도 오히려 정체를 빚는 게 한국 현실”이라며 “운전자들에게 원칙만 뇌리에 심어줘도 교통질서는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 했다. 
    제도는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교통 당국도 제도를 도입해놓고 손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 단속을 통해 제도 정착을 촉진해야 한다”고 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김상옥 수석연구원은 “교통사고 건수는 줄지 않는데 교통경찰은 줄고 있다”며 “인력 부족으로 인한 단속 약화 추세를 극복하려면 선진국이 사용하는 기법을 도입해 단속의 질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연구원은 대표적 예로 일본의 ‘복면(覆面) 경찰차’ 단속을 꼽았다. 경찰관이 일반 차량을 타고 교통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일종의 ‘언더커버(암행)’ 기법이다. 국제경찰청장협회(IAPA) 산하 고속도로위원회에서도 이 ‘언더커버’ 기법을 고속도로에서의 효율적 단속 방법으로 꼽는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는 점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교통안전공단 최병호 미래교통개발처장은 “한국 경찰은 가벼운 교통 위반에 대해선 ‘그런 것까지 단속해야 하느냐’며 대충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며 “큰 방축(防築)도 개미구멍 하나에 무너질 수 있듯, 가벼운 위반 사항이라도 철저히 단속해야 교통질서와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은 도로에서의 교통법규 위반 행위에 대해 세세한 징벌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최 처장은 “독일 연방교통부는 추월 차량이 추월 대상보다 속도가 현저히 빠르지 않을 경우에도 벌금 80유로(약 10만원)와 벌점을 부여하는데, 이처럼 잘못인지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위반 사항에 대해서까지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처벌 규정을 적용해야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현웅·이태동 기자
    면허시험에서도 천대받는 ‘지정차로제’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운전면허시험 필기시험 문항을 ‘문제은행’에서 무작위로 조합해 출제한다. 일본은 6300개, 벨기에는 3000개, 독일은 1200개 문항 풀(pool)에서 출제하지만 한국의 운전면허 문제 풀은 700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작년까진 300개 문항 풀에서 출제하다가, ‘운전 요령을 숙지하기엔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제기돼 작년 9월 문제 풀을 대거 늘린 것이 이 정도다.
    그러나 본지가 한국 운전면허시험 문제 풀 700문항을 확인한 결과 지정차로제에 대해 언급한 문항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음 중 편도 4차로 고속도로에서 특수차량(트레일러)의 주행 차로는?’처럼 지정차로제 전반에 대한 문항과, ‘준법 운전을 하고 있는 운전자는?’이란 문항 정도였다. 
    반면 지나치게 어렵거나 운전자들이 도로 현장에서 접할 가능성이 크지 않은 문항은 이보다 많았다. 교통 전문가들은 ‘운전자의 운전 행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가장 관련성이 높은 것은?’이란 문항은 운전자들보다는 교통 연구자에게나 필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로교통법상 공동 위험 행위인 것은?’이란 문항도 마찬가지라 했다.
    전문가들은 운전자들이 도로에서 지켜야 할 기초적 원칙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고루 출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김진형 교수는 “현행 무작위 출제 방식으로는 응시자들이 운전 분야 전체에 대해 골고루 숙지하기 어렵다”며 “수능에서 단원별로 문제를 내듯 차량 정비, 교차로, 지정차로제 등 세부 영역별로 문제를 할당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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