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류 트로트 연애 詩人'… 가볍다고? 어려운건 남들 다하니까"

입력 2015.07.08 03:00

스토리툰 '싸나희 순정' 낸 류근

"솔직히 페이스북 덕분에 여러 독특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는 류근 시인. /이덕훈 기자
오랫동안 본격 문학의 대표는 시(詩)였고, 대중문화의 힘은 공중파 TV에서 나왔다. 어느덧 문화의 새 파워는 SNS와 웹툰에서 나오는 세상이 됐다. 요즘 류근(49) 시인이 그런 신구(新舊)문화의 경계를 오가는 전방위(全方位) 문인으로 통한다. 류근은 시집 '상처적 체질'(2010년)을 권위있는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시인이면서 가수 김광석의 노랫말도 지은 바 있다. 그는 2013년 10월부터 KBS TV의 '역사저널 그날'에 고정 출연 중인가 하면, 페이스북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는 SNS 작가이기도 하다.

류 시인이 페북에 올린 이야기에 웹툰 같은 삽화를 얹은 책 '싸나희 순정'(문학세계사)을 냈다. 인터넷을 통해 활동 중인 일러스트레이터 퍼엉이 그린 삽화가 288쪽짜리 책의 절반을 차지한다. 시인이 쓴 성인 동화 같기도 하고, 시인의 글을 웹툰으로 옮긴 것 같은 책이다. 김종해·김요일 부자(父子) 시인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선 스토리툰(storytoon)이란 신조어를 붙였고 서점에선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다. 류근 시인은 "정체불명의 책을 하나 만들어봤다"며 책의 정체를 규정한다.

'싸나희 순정'은 낭만파 시인이 시골 마을에서 동화 작가를 꿈꾸는 순정파 50대 아저씨를 만나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머니에 랭보의 시 세 편밖에 든 것 없으니 이젠 무엇이든 탕진하고 울 일도 없다'라며 세상을 등진 시인이 순정에 가득 찬 아저씨를 통해 소박한 행복과 구원의 실마리를 찾는 것.

류 시인은 "서울을 떠나 경기도 양평의 끝자락에서 글을 쓸 때가 있었다"며 "그때 만난 동네 아저씨의 삶에 내 상상력을 보태 이야기를 지어 페북에 올렸다"고 말했다. "농사짓는 노총각이지만 동화를 쓰는 아저씨였다. 동심을 유지하느라 술·담배도 안 하는 아저씨였다. 번번이 신춘문예에서 낙방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여자 프로축구 선수를 짝사랑했다가 끝내 차이고 말았다. 보기 드물게 순정과 연정이 있는 아저씨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은 '시를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세태를 향해 일갈을 하기도 한다. '머리로 쓴 시를 하필 머리로 읽으니까 머리가 아프지요. 누군가 마음으로 쓴 시를 마음으로 읽으면 마음이 아플 텐데,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나면 세상이 조금 덜 아파질지도 몰라요.'

류 시인은 페북 활동에 대해 "몇몇 시인들이 저를 보고 '감성(感性)'을 판다고 욕을 하지만, 어렵고 근엄한 것은 남들이 다하는 것"이라며 "어차피 저는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니까 제 자리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시집 한 권 분량을 다 써놓았지만, 시집을 내기엔 너무 아까워서 아직 쥐고 있다"며 "첫 시집도 등단 18년 만에 냈는데 이것은 이상한 자폐증"이라고 푸념했다.

류 시인은 TV 프로 '역사저널 그날' 출연과 관련해 "우리 역사에 대해 울컥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가 방송 녹화 중 눈물을 흘린 게 그대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임진왜란 때 왜에 끌려간 조선 피로인(被擄人) 10만 명을 다룬 내용이었다. 그는 "도공(陶工) 심수관 집안의 후손들이 지금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고향을 향해 절을 하지만, 사실 그 방향이 틀렸다고 하더라"며 "아, 그리운 것들은 왜 모두 딴 곳에 있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절로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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