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차로는 비워둡시다 中

운전자도 경찰도 헛갈리는 지정차로제…정답은?

고속도로의 대원칙은 '2차로 이하 주행차로에선 정속 주행하고, 빨리 가고 싶은 차량은 추월차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월차로인 1차로에서 제한속도를 지켜가며 계속 주행하는 것은 지정차로제 위반이다. 그러나 운전자는 물론 경찰까지도 지정차로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1차로는 비워둡시다] 中편에서는 ‘규정 속도로 추월 차로를 주행 중인 차량이 과속 차량의 추월을 위해 1차로에서 비켜줘야 하는가’ 등 지정차로제에 대한 여러가지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공개한다.

  •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5.07.07 22:33 | 수정 : 2016.03.15 10:27

    고속도로 1차로에서 110㎞ 달릴 때, 과속차가 번쩍대면 비켜줘야할까?

    제한속도 110㎞/h의 고속도로에서 A차량이 추월차로인 1차로에서 110㎞/h에 맞춰 정속 주행을 하고 있다. 이때 뒤에서 B차량이 130㎞/h로 달려와 바짝 붙이곤 비켜달라며 상향등을 깜빡인다.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 중인 A차량이 과속으로 주행하는 B차량을 위해 차로를 변경해줘야 할까.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대부분 운전자가 겪는 딜레마다. 본지 취재팀이 인터뷰한 운전자들의 답변은 제각각이었다. 평소 영동고속도로를 자주 이용하는 박모(58)씨는 “규정 속도를 지키며 운전하는 내가 과속 차량을 위해 비켜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모(33)씨는 “비켜주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가 왜 비켜줘야 하나 하는 생각에 짜증이 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규정 속도를 지킨다면 어느 차로로 달려도 된다’는 운전자들의 인식이 지정차로제 정착을 저해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규정 속도를 넘어 130㎞/h로 달리는 B차량은 속도위반으로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A차량이 1차로에서 계속 주행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B차량의 속도위반 여부와 상관없이 A차량은 추월차로를 비워줘야 한다. 고속도로의 대원칙은 ‘2차로 이하 주행차로에선 정속 주행하고, 빨리 가고 싶은 차량은 추월차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속하는 차량이 얄미워 1차로를 비켜주지 않는 건 과속 차량의 위법과는 별개로 ‘방해 운전’일 수 있는 셈이다. 
    차로를 가리지 않고 모든 차로에서 정속 주행을 하면 빨리 가고 싶은 차량 역시 모든 차로에서 추월을 시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좌우 어느 쪽에서 추월 차량이 끼어들지 몰라 정속 주행하는 차량도 긴장하며 ‘방어 운전’을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계 당국에선 방치 상태다. 속도위반과 달리 지정차로제 위반은 특정 지점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적발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충령 기자
    1차로에서 앞차가 안 비켜주자... 보복 운전하다 대형사고 나기도

    본지는 지난 3~4일 이틀간 2년 이상 운전 경력을 가진 성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지정차로제 인식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고속도로 1차로에서 규정 속도를 지키며 주행 중일 때 후방에서 과속 차량이 추월을 시도한다면 비켜줘야 하나’라는 질문에 ‘차량 흐름을 위해 비켜줘야 한다’고 답한 이는 69%였다. 추월 차로에서 계속 정속 주행을 하는 게 교통법규 위반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50%였다. 경부고속도로 등에서 버스전용차로제가 적용되는 구간에선 2차로가 추월 차로가 된다. 응답자의 60%만이 이 사실을 알았다. ‘좌측 차로 추월 원칙’은 69%가 바르게 답했고, 추월 차로도 주행 차로와 마찬가지로 같은 속도제한을 받는다는 것은 62%만이 제대로 답했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의 감수를 받아 제작한 ‘지정차로제 상식 5문항’을 모두 맞힌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14%에 불과했다. 응답자 5%는 단 한 문제도 맞히지 못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한국 운전자 상당수가 ‘제한속도를 지키며 정속 주행만 한다면 어느 차로에서 달려도 된다’고 여기고 있음이 확인된다. 실제 서울에서 경기 남부 지역으로 자주 출장 다니는 김모(36)씨는 평소 고속도로에서 1차로만 고집한다. 그는 “왼쪽 끝 차로를 이용하면 좌우 양쪽에서 끼어드는 차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안정감이 있다”며 “최고 제한속도를 지키면서 정속 주행하는데 문제 될 게 있느냐”고 했다. 
    1차로로 정속 주행을 하는 운전자는 제한속도만 지키면 ‘준법 주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도로교통법상 불법이다. 불법 여부를 떠나 1차로를 이용해 추월하려는 차에 이런 차는 진로를 막는 ‘방해 운전’을 하는 것으로 비치고, 급기야 보복 운전을 낳는 문제도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용인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제네시스 삼단봉’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해자는 앞차 운전자가 차로를 양보해 주지 않는 데에 화가 나 추월해 피해 차량을 세운 뒤 삼단봉을 꺼내 피해 차량 전면 유리창을 깨트렸다. 추월 차로가 지켜지지 않자 좌우로 이리저리 칼질을 한 추월 차량이 다른 운전자와 갈등을 부른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P씨는 남해고속도로 부산 방향으로 운전하다 한 화물차의 보복 운전으로 목숨을 잃었다. 가해자는 앞서 가던 P씨가 추월을 하려고 좌우로 칼질 운전을 하는 데 분을 삭이지 못하고 P씨의 차량을 추월해 급감속해 사고를 냈다. 
    사고에 이르지 않더라도 도로 곳곳에선 추월 문제로 운전자 간 감정싸움을 벌이다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는 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30일 천안~논산고속도로 상행선 정안휴게소 부근에서 신모(50)씨는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뒤에 추월을 원하는 차량이 바짝 붙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속 주행을 하고 있었다. 뒤 차량은 2차로로 추월해 신씨 옆으로 나란히 주행했다. 신씨는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하는 상대 운전자 때문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계 당국에선 뾰족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지난 1일 취재팀이 고속도로에서 실태를 조사하며 차로 준수에 관한 안내를 본 건 김포 IC에 붙은 ‘고속도로 지정차로 준수!’라는 현수막과,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돌아다니는 차량 전광판의 ‘지정차로 준수’ 문구뿐이었다. 단속 경찰이나 고속도로 관리 당국 요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운전자는 “추월 차로 위반에 대한 단속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데 굳이 지킬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제한속도 시속 100㎞인 도로에서 실제 단속은 10%를 더한 시속 110㎞ 이상으로 주행했을 때부터 이뤄진다. 경찰은 단속 카메라에 오차가 있을 수도 있어 억울하게 단속되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주행 차로에선 제한속도 이내로 운전하고 추월 차로에선 제한속도의 10%를 더한 속도 안에서 단속하는 등 현실적 대책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충령·이태동 기자

    운전 베테랑도 헷갈리는 ‘지정차로제’

    서울에서 판교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김모(38)씨는 최근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지난 3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2차로로 주행하다가 앞차를 추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좌우를 살피고 교통량이 많은 1차로보다 비교적 한산한 3차로 쪽으로 추월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우측 백미러로 보이는 3차로 뒤차와는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한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김씨가 3차로에 거의 접어들었을 때 예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3차로 차량이 있었고 결국 이 차와 충돌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오른쪽 차로를 이용해 추월하는 것은 왼쪽 차로 추월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한다. 최병호 교통안전공단 미래교통개발처장은 “오른쪽 차로는 왼쪽 차로보다 차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왼쪽 차선에서 달리던 속도로 오른쪽 차로에 끼어들면 오른쪽 차로에서 앞서가던 차 뒤편을 추돌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또 “속도를 줄이면서 오른쪽 차로로 들어간다 해도 원래 있던 차로의 뒤차에 받힐 위험이 커진다”고 했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운전자가 오른쪽 차로로 끼어들 경우 조수석 탑승자 때문에 시야가 가려질 수 있고, 우측 백미러가 멀리 보이기 때문에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측 차로를 이용한 추월이 흔해지면 추월을 당하는 운전자 입장에서도 좌우 측 차선을 모두 경계해야 하기에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설 박사는 “다른 차의 법규 준수 여부까지 신경 써야 하는 ‘방어운전’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와 피로는 나만 법을 지키면 안전한 ‘준법운전’ 상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 원칙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본지가 2년 이상 운전 경력의 성인 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앞차를 추월할 때 ‘교통 상황을 고려해 마음대로 판단해 좌·우 차선 중 한 곳을 택해 추월하면 된다’고 답한 이가 22%나 됐고, 아예 ‘오른쪽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고 반대로 아는 응답자도 6%에 달했다.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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