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호(46) 순천향대 의생명연구원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논문이 실린 저명 국제학술지 '셀 리포트(Cell Reports )'를 받아들었다. '셀 리포트'는 '셀'지의 자매 학술지이다. 류 교수의 이름 옆에는 지난 3월 먼저 세상을 떠난 도윤경 울산과학기술원(UNIST·유니스트) 생명과학부 교수의 이름이 공동저자로 함께 적혀 있었다. 도 교수는 3월 28일, 과학자로서 한창 전성기인 43세의 나이에 난소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1995년 서울대 분자생물학 대학원에서 연구실 선후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1998년 결혼했다. 흑사병, 에이즈, B형 간염 등 난치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면역세포인 '폴리큘라 헬퍼 T세포'의 생성 원리를 밝혀낸 이 논문은 부부의 마지막 합작품이자, 도 교수의 유작(遺作)이다.
류 교수는 6일 "5년 넘게 병마와 싸우면서도 절대 지지 않았던 자존심 센 바른생활 교수"라고 도 교수를 떠올렸다. 17년 전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두 사람은 지난해까지 이미 세 차례 함께 논문을 썼다. 암 등 여러 이유로 아이는 갖지 못했다.
버지니아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도 교수는 면역세포인 '수지상(樹枝狀) 세포'를 세계 최초로 발견해 2011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랠프 스타인먼 록펠러대 교수 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9년 UNIST 개교 당시 조무제 총장이 직접 나서 도 교수를 영입했다고 한다. 한국 연구자로서는 드물게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핵심 과제를 따내는가 하면,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가 주최하는 휴먼테크논문대회에서 제자들과 함께 금상을 받기도 했다.
남편 류 교수는 유전자(DNA)와 단백질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는 생물정보학과 암을 다루는 종양학 분야 전문가다. 류 교수는 "백신이나 치료제 등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면역학과 생물정보학 분야에서 각각 진행하는 연구가 합쳐져야 완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 부부는 상호 보완적인 연구 파트너였다"고 말했다.
도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에도 난소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나, 한국으로 돌아온 뒤인 2010년 난소암 재발 사실을 알았다. 류 교수는 "작년 2학기에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한 시간 수업하면 온종일 연구실에 누워서 괴로워하면서도 단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면서 "병원에 누워서도 의식이 있는 마지막까지 학생들의 연구와 논문자료를 확인해 메일을 보내주는 모습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암을 연구하는 내가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면서 "아내가 못다 이룬 연구를 끝까지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제자와 동료들도 도 교수가 떠난 슬픔을 잊지 못하고 있다. 화학공학부 박종우(24)씨는 "백혈병으로 사망한 학생의 소식을 전해듣고 강의실에서 펑펑 울면서 '젊음이 너무 아깝다'고 말하던 교수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면서 "도 교수님의 젊음과 열정이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도 교수의 동료였던 조윤경 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UNIST 개교와 함께 부임해 모두들 힘들었던 시기에도 도 교수는 항상 밝고 즐겁게 연구하는 빛나는 과학자였다"면서 "우리나라 면역학 연구를 이끌던 사람이어서 아쉬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