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고문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파열음 현상은 대통령중심제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건국 이래 70여년 유지해온 대통령 중심의 통치 체제가 그 역할과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회의와 피로감이 함께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권력이 너무 한곳에 몰려 균형이 깨진 데다 너도나도 대통령 하겠다는 싸움이 잦고 게다가 한번 선택하면 꼼짝없이 5년이 묶여버리는 이 낭패감 때문이다.

고도성장의 시기이건 집중적인 민주화의 시기이건 우리는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앞장서서 끌고가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비록 시행착오는 있었어도 우리가 성취한 성과는 그 착오를 덮고도 남았다. 난세는 영웅을 만들어냈고 국민은 영웅을 원했다. 그 영웅은 독주(獨走)를 원했고 국민은 기꺼이 또는 마지못해 그것을 헌납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크게 보면 성공한 세월이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인 것 같다. 대통령 중심의 통치 체제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당과 야당은 한 방향으로 가는 두 바퀴가 아니라 사사건건 반대 방향으로 가는 '원수'로 변했다. 그 중심에 으레 '대통령'이라는 회오리가 있었다. 여당은 대통령과 당이 치고받는 난장판이고, 야당은 친노와 비노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막가파로 가고 있다. 그 싸움의 배경에는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자리'가 있다.

그래도 지난날에는 영웅, 아니면 영웅 흉내라도 내는 '개룡남(개천에서 용이 된 남자)'들이 있었다. 권력은 그 영웅을 중심으로 몰리고 뭉쳐서 생성됐다. 그것을 묶어주는 '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가고 있다. '잠룡(潛龍)'으로 불리는 유사(類似) 용들이 할거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제는 예전처럼 '돈'도 없고 그나마도 잘못 얽혀들었다간 패가망신하는 바람에 '월급쟁이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 영웅의 시대를 맛보았던 사람들은 요즘 "X나 X나 모두 대통령 하겠다는 세상이니…"라고 힐난하지만 실제로 너도나도 "나라고 못하겠느냐"고 나서는 세상이다. 그것이 오늘의 세상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으면 정치도 바뀌어야 하고 통치 체제도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싸움의 원인인 '대통령 하나'를 '총리 여럿'으로 나누고 그렇게 해서 정치 투쟁의 예각을 완화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느 한두 영웅이 나서, 또는 양대 진영이 단일 깃발을 쳐들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협치(協治)로 갈 수밖에 없다. 사회적 욕구가 다양하고 불만과 불평이 세분되는 시대에는 조정과 타협, 공정과 공존의 정신이 요구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도자의 결단력·추진력보다 조화력·융화력이 우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것이 바로 집단지성(集團知性)이다. 지도자의 능력에 좌우되기보다 집단과 공동체로서 이성에 의존하는 개념이다. 그것이 국민 차원에서는 공동체의 책임이고, 정치권 차원에서는 정당끼리의 협업 책임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타협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사사건건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 이 주장들이 백가쟁명식으로 부딪치는 상황에서 우리는 싫건 좋건 타협과 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금 정치권에 번지고 있는 난맥상이 상당 부분 타협과 양보 없는 일방통행과 소통 부족 때문이라면 그것은 내각제에서 좀 더 원활히 조정될 수 있다. 그것은 지금처럼 가부(可否) 또는 좌우 진영만 있는 상황이 아니라 복수(複數)의 소수 의견이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고 그것이 타협의 명분과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의 또 다른 플러스 면(面)은 지금껏 우리 정치를 좀먹어온 정경유착의 폐해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다. 5~8년의 장기 집권보다 단기 집권에 대한 투자(?) 유인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것은 국민이 한 정당과 한 권력자에게 5년간 볼모 잡히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집권 1년 차는 과잉 의욕으로 오버 액션하다가 보내고, 2년 차는 현실 적응을 위해 좌우 클릭하다가 보내고, 3년 차부터 동력이 떨어지다가 4년 차는 차기(次期)에 밀리거나 잊혀버리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국민은 투표장에서 도장 한번 찍고는 5년을 기다리거나 끌탕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것보다는 잘하는 사람은 여러 번 뽑아주고 못하는 사람은 빨리 갈아치우는 것―이것이 '주인'으로서는 해볼 만한 행세다.

물론 내각제에서도 정치의 난맥상으로 나라가 지리멸렬하는 위험 가능성은 있다. 또 통일이라든가 전쟁 등 안보 차원의 대응에서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국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새 헌법에 국가적 비상사태에 대한 통치 수단의 전환을 명기하면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대통령제하에서 살아볼 만큼 살아봤고 그 단점을 겪어볼 만큼 겪어 왔다. 그런 경험을 가진 우리이기에 선진 여러 나라가 성공적으로 하고 있는 내각제를 해볼 충분한 자격과 타당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