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1차로는 비워둡시다 上

추월차로로 주행하는 거북이 차량들

차로(車路)에는 저마다 역할이 있다. 도로교통법상 고속도로에서 1차로는 추월 차량을 위해 비워두는 차로다.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제한속도를 지켜가며 계속 주행하는 것은 지정차로제 위반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추월 차로의 기능을 무시하고 정속 주행을 하는 차량이 차량 흐름을 무너뜨리고 법규 위반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연 사람들은 얼마나 지정차로제를 알고 또 지키고 있을까.

  • 뉴스큐레이션팀

    입력 : 2015.07.07 03:00 | 수정 : 2015.07.07 22:36

    1차로에서 계속 달리는 차, 도로 흐름 막는 사고유발차

    지난 1일 오후 1시 20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북천안 IC를 2km 앞둔 지점 1차로에 차량 6대가 꼬리를 물고 편대 주행을 하고 있었다. 선두에 섰던 흰색 그랜드카니발이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시속 90~100㎞ 정도로 정속(定速) 주행을 하자 추월을 하려던 차들이 진로가 막혀 길게 늘어선 것이다. 고속으로 주행하는 6대의 차 간 간격은 각각 10m도 되지 않았다. 

    1~2분간 그랜드카니발 바로 뒤를 따르던 은색 스타렉스 차량이 오른쪽 2차로로 차선을 바꾸더니 그랜드카니발을 앞질러 다시 1차로로 진입했다. 스타렉스 차량이 빠져나가자 그 뒤에 있던 흰색 벤츠 차량이 그랜드카니발 뒤 2m 정도까지 바짝 붙였다. 그랜드카니발은 한참 뒤에야 2차로로 차로를 변경했다.




    차로(車路)에는 저마다 역할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1차로는 추월 차량을 위해 비워두는 차로다. 추월 차로인 1차로에서 제한속도를 지켜가며 계속 주행하는 것은 지정차로제 위반에 해당한다. 전문가들은 고속도로에서 추월 차로의 기능을 무시하고 정속 주행을 하는 차량이 차량 흐름을 무너뜨리고 법규 위반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본지 취재팀은 지난 1일 경부·중부 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평택-제천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등 주요 도로를 달리며 지정차로제 운영 실태를 취재했다. 추월 차로 주행 원칙대로 1차로를 이용해 2차로 차량을 앞지르고 다시 2 차로로 복귀하는 차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앞지르기를 할 때 이용하는 차로도 오른쪽·왼쪽을 가리지 않았다. ‘1차로는 추월할 때 외에는 비워둬야 한다’는 지정차로제는 있으나 마나 한 제도였다.
    본지가 지난 3~4일 이틀간 2년 이상 운전 경력의 성인남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10%(10명)만이 ‘항상 추월 차로를 준수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도로에서 지정차로제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18%(18명)에 불과했다.
    김충령 기자

    독일선
    "내 차가 오른쪽 차보다
    항상 빨라야한다"
    원칙 확고해

    1차로 들어온 66대, 5대만 주행로 복귀… '휴지 조각'된 지정차로제
    "1일 오후 3시 20분부터 20분간 본지 취재팀이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대소 분기점 인근에서 확인한 추월 차로 진입 차는 모두 66대였다. 이 중 1차로로 추월하고 곧바로 본래 차로로 복귀한 차는 5대에 불과했다. 1차로도 일반 주행 차로처럼 이용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1차로로 운행하다 앞차에 막히면 오른쪽 2차로로 추월해 다시 1차로로 진입했다. 좌우 어느 쪽에서, 언제 추월 차량이 끼어들지 모르니 가운데 차로로 운행하는 운전자들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차로마다 주행 차종과 용도를 정해 안심하고 주행하자는 지정차로제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지정차로제를 지키지 않는 운전 행태는 보복 운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13년 8월 충북 청원군 중부고속도로 오창 나들목 인근에서 발생한 5중 추돌 사고의 원인은 추월 차로를 놓고 벌어진 운전자들 간 감정 다툼이었다. 가해자인 i40 운전자는 추월 차로에서 정속 주행하며 앞지르기를 방해한 운전자에게 보복하려고 1차로에서 차를 갑자기 세웠고, 미처 정지 차량을 보지 못한 차 4대가 연쇄 추돌해 1명이 사망했다.
    2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비슷한 광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오후 1시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버스 전용차로가 끝나는 오산 IC 인근 1차로 검은색 그랜저 뒤로 은색 쏘나타가 바짝 붙어 달렸다. 쏘나타는 상향등을 켜며 지속적으로 추월을 시도했지만, 그랜저는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2차로를 이용해 앞지르기에 성공한 소나타는 주행 속도를 줄여 그랜저의 진로를 방해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좌우 어디서 끼어들지' 가운데 차로 운전자는 불안불안…보복운전 불씨 되기도
    차가 많지 않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나 용인~서울 고속도로 등에선 1차로를 비워놓거나 1차로에서 가더라도 뒤차가 오면 바로 차로를 변경해 양보하는 에티켓이 비교적 잘 지켜졌다. 하지만 교통량이 많은 경부·중부고속도로에선 추월 차로 개념이 사라졌다. 오후 4시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동서울IC 근처, 교통량이 늘며 차들은 시속 90㎞ 수준으로 운행했다. 그러자 추월하려는 차들은 좌우 차로 가릴 것 없이 빈틈을 찾아 수시로 차로를 넘나들었다. 운전석은 차 왼쪽에 있기 때문에 다른 차가 오른쪽으로 추월하면 운전자의 반응이 늦을 수 있다. 그래서 마련된 ‘운전자는 앞차를 추월하려면 앞차의 좌측으로 통행해야 한다’는 도로교통법 규정은 있으나 마나였다. 
    오전 11시 32분쯤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서울 방면. 검은색 스포츠카가 3차로에서 1차로로, 다시 한 번에 4차로로 대각선을 긋듯 ‘칼질’로 차로를 바꿔 북인천IC로 빠져나갔다. 2·3차로를 달리던 차량은 속도를 줄이고 비상등을 켰다. 김진형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독일에는 ‘내 차가 오른쪽 차보다 빨라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으로 상황을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항상 좌측 차로로 추월한다는 추월선의 원칙이 확고하다는 얘기다.
    지정차로를 지키지 않는 건 화물차도 마찬가지였다. 편도 4차로라면 1.5m이하 화물차는 3차로, 1.5m을 초과하는 화물차나 특수차는 4차로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날 고속도로에서 만난 화물차들은 제한속도는 무시한 채 여러 차로를 넘나들었다. 오후 1시 19분쯤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천안시 용정1교 부근에선 4.5m트럭과 건설 기계용 대형 차량이 편도 4차로 중 2·3차로에 서서 나란히 달렸다.
    이날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천안까지 운전한 이성교(58)씨는 “1차로로 가는 운전자들은 속도만 잘 맞추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모든 도로에서 지정차로제 준수를 기대하기엔 한국과 교통 선진국 격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김진형 교수는 “우선 고속도로처럼 다차로에서 ‘1차로는 추월 차로’라는 인식을, 다른 도로에서도 추월은 좌측 차선으로 하는 것이란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문현웅·이태동 기자
    영국선 “추월차로는 화장실... 볼일 보고 바로 나오는 곳”
    독일, 추월 차로 항상 비워둬
    일본, 사복 경찰이 암행 단속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에는 속도 무제한 구간이 있다. 일부 차는 이 구간에서 시속 200㎞로 질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은 차량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2012년 기준)가 0.7명으로 2.4명인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독일 아우토반이 최고 시속 110㎞로 제한된 한국의 고속도로보다 안전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차로 이용에 대한 운전자 간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속도보다는 ‘흐름’이 교통사고 발생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운전자들은 앞지르기할 때를 빼고는 추월 차선을 항상 비워둔다. 1차선에서 저속 주행을 하거나 우측 차로를 이용해 끼어드는 등 원칙 없는 차로 이용으로 차량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가 거의 없다. 공단 관계자는 “독일에서는 잠깐 추월 차선을 달릴 때라도 뒤에서 다가오는 차량이 있으면 무조건 비켜주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80년 가까이 고속도로를 운행한 나라이기에, 독일 운전자는 배려·양보가 안전과 직결되는 요소임을 잘 알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차량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0.6명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복면(覆面) 경찰차’ 효과가 크다고 말한다. 사복 차림 경찰이 일반 승용차를 타고 암행(暗行) 단속을 하며 교통법규 위반을 적발하는 방식이다. 한국에선 추월 차선에서 계속 주행해도 단속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관계자는 “일본은 복면 경찰차 덕분에 적발될 가능성이 낮은 교통법규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이 때문에 추월 차선이 항상 비어 있다”고 했다. 
    영국은 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0.5명으로 OECD 평균인 1.1명의 절반 수준이다. ‘하이웨이 코드’라는 도로 교통령에 따라 차량 질서가 엄격히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연구원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원칙적으로 느린 차는 바깥쪽 차로로 운행해야 하고, 길이 비어 있으면 차는 중앙선을 기준으로 바깥쪽 차선부터 채워야 한다”고 했다. 영국에는 ‘추월 차로는 화장실이다’란 교통 금언(金言)이 있다고 한다. 볼일을 보고 나면 바로 나오는 곳이지, 오래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는 뜻이다.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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