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都市와 바이러스의 대결

입력 2015.07.06 03:00 | 수정 2015.07.06 18:10

이지혜 보건의료전문기자
이지혜 보건의료전문기자
믿기 힘들겠지만 현대 도시 문명이 지금까지 건재한 건 '콜레라 덕분'이다. 150여년 전 영국 의사 존 스노가 콜레라균의 감염 경로를 밝히면서 공중 보건과 근대 역학(疫學)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산업혁명의 전성기를 누리던 런던은 인구 250만명을 거느린 세계 최대 도시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들수록 쓰레기도 넘쳐나 도시는 엄청난 악취를 풍겼다. 게다가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빈민가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속출했다. 고대 로마도 인구 100만 수준에서 멸망했는데 과연 런던이 이런 큰 도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1854년 여름 콜레라가 또 런던을 덮쳤다. 의사 스노는 콜레라 유행이 시작된 브로드가(街)를 샅샅이 훑었다. 집집마다 돌면서 환자와 가족을 인터뷰하고 사망자 83명 가운데 73명이 브로드가 40번지에 있는 우물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엔 숨쉬기 힘들 정도로 악취가 범람하던 시절이라 저명한 간호사 나이팅게일을 비롯한 의학계는 공기 속 나쁜 기운, 즉 악취가 병을 부른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스노는 달랐다. 콜레라 환자는 갑작스러운 복통과 엄청난 설사에 이어 쌀뜨물 같은 장액(腸液)을 콸콸 쏟아내고 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거죽만 남은 듯 퀭한 모습으로 사망했다. 그래서 이 병의 원인은 악취가 아니라 분명 입을 통해 소화기로 들어온 '그 무엇'일 거라고 여겼다(당시엔 아직 세균이 발견되지 않았다). 스노가 우물의 펌프 손잡이를 떼어버리자 거짓말처럼 콜레라가 사라졌다. 추가 조사에서는 콜레라 유행 직전에 한 주민이 콜레라로 사망한 아기의 똥 기저귀 빤 물을 우물 근처에 내다버린 사실이 드러났다. 분변에 오염된 식수가 콜레라를 퍼뜨린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스노가 학계와 공무원들의 헛된 통념을 깨뜨린 덕분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오물과 하수 처리 시설을 갖추는 '공중 보건'이 도입됐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인구 1000만명 이상인 메가 도시들이 가능한 건 공중 보건의 기반 덕분이다. 콜레라균의 역학이 도시 문명을 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신약(新藥)보다 인간 수명 연장에 더 크게 기여한 것도 상하수도 시설이었다.

도시와 바이러스 같은 세균과의 대결에서 이제 또 하나의 난제가 닥쳤다. 인구 이동이 워낙 많아 세계가 한마을인 세상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 먼 나라 감염병도 언제든 우리한테 생길 수 있다.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의 풍토병도 우리 이웃의 병이라 여기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원인 바이러스가 규명된 메르스가 들어와도 온 나라가 휘청했는데 원인균도 밝혀지지 않은 신종 감염병이 발병하면 과연 지금 우리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사스나 신종플루 때 잘 대처했다고 하지만 국경을 지키는 '울타리 방역'에 불과했다. 스노처럼 소신을 갖고 현장을 누비되 글로벌 감각까지 갖춘 역학 전문가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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