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조선일보
  • 문태준 시인
    입력 2015.07.04 03:00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1915~2000)

    [가슴으로 읽는 시]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사랑을 만나러 갈 때에는 들떠 두근거리지만 떠나올 적에는 다시 만날 기약이 없어 서운하고 아쉽다. 그러나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 있고, 헤어진 사람은 후일에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이 시를 읽으면 이별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가슴에서 슬픔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내 소소하게 여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별의 기억에서도 한 송이 연꽃의 미묘한 향기가 날 것 같다. 게다가 이 생애 다음에 올 내생(來生)도 대낮처럼 훤히 보일 것 같다.

    살랑살랑 불어가는 바람의 보법(步法)을 보시라. 우리가 하는 사랑의 밀어(蜜語)도 저 바람이 다 실어가리니. 연꽃은 진흙 속에 있지만 항상 깨끗함을 잃지 않는다. 모든 인연이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았으면. 모든 인연이 풍경을 뎅그렁, 뎅그렁, 흔들고 가는 한 줄기 맑은 바람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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