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는 죽었다…'터미네이터 제니시스'

  • 뉴시스

    입력 : 2015.07.01 09:49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감독 앨런 테일러)는 앞서 개봉해 지난달 28일까지 무려 12억4500만 달러(약 1조4000억원)를 벌어들인 공룡영화 '쥬라기 월드'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는 공통점이 많다. 거대한 성공(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을 거둔 전작을 가진 영화라는 점, 후속작들이 혹독한 평가를 받은 점, 그리고 끝이 난 듯한 시리즈를 '리부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쥬라기 월드'뿐 아니라 많은 시리즈 영화들이 이런 과정을 거쳤고(이를테면 '배트맨' 시리즈), 현재 거치고 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서 느껴지는 '쥬라기 월드'의 기시감은 영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그리고 이 기시감은 시리즈의 명맥을 이어가는 최악의 방식으로 보인다.

    2029년, 인간은 인공지능 시스템 스카이넷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유일한 희망은 반란군의 수장 존 코너(제이슨 클락). 존 코너는 반란군을 총집결시켜 스카이넷 중심부를 타격한다. 하지만 스카이넷은 마지막 순간 시간여행 장치를 활용해 인조인간 T-800을 1984년으로 보낸다. 존 코너의 어머니인 새라 코너를 살해해 존 코너의 탄생을 막으려는 것. 존 코너는 반란군의 2인자인 카일 리스(제이 코트니)를 1984년으로 보내 새라를 지키려 한다.

    '쥬라기 월드'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이 영화에서 어떤 야심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1993)에서 공룡은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공룡 자체도 중요했지만, 공룡이 탄생하는 과정이 더 중요했다(이 영화의 주인공은 과학자다). 하지만 '쥬라기 월드'는 다르다. 언뜻 전작과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진 듯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평범한 '괴수 액션'이다(이 영화의 주인공은 군인이다). 여기에 전작을 떠올리게 하는 갖가지 설정들을 끼워넣는다. 흔한 '추억팔이'다. 이런 지점에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쥬라기 월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사실 '기시감이 느껴진다'라기 보다 '똑같다'고 해도 무방하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도 영화적 야심은 없다.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액션 영화라는 데 이견은 없지만, 그렇더라도 단순한 '액션' 영화는 아니었다. 미래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인간이 망쳐버린 미래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담겼다. 이 고민과 성찰이 영화에 묵직함을 더했다. 그렇다면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는? 킬링타임용 액션영화로 후퇴했다. 1984년·1997년·2017년·2029년이 뒤섞인 강박증적인 시간여행 콘셉트(심지어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이 영화가 얼마나 고민 없이 만들어졌는지 스스로 드러낸다. 젊은 T-800·늙은(늙고 있는) T-800·동양인 T-1000·T-3000을 나열하는 장면에서는 '추억팔이'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다는 걸 고백하는 듯하다. 여기에 전작에서 이미 나왔던 대사와 세세한 설정들을 반복한다.

    '쥬라기 월드'가 그랬듯이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에도 볼거리가 있는 건 분명하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출연 자체가 그렇고, 젊은(보디빌더의 몸을 가진) 슈워제네거를 볼 수도 있다. '터미네이터' 시리즈 최대 악당인 T-1000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과거 이 시리즈에 열광하던 관객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이미 전작에서 우리가 다 봤던 것들이다. 앨런 테일러 감독은 너무 익숙한 이 캐릭터들을 왜 새 시리즈에서 다시 봐야 하는지 납득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이 '향수 자극 캐릭터'들에게는 말 그대로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어떤 역할도 보이지 않는다. T-3000이라는 새로운 인공지능 로봇이 나오기는 하지만, T-1000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정통 액션 영화의 장점도 없고 창의적인 액션 장면도 없다. 그저 총을 쏘고, 몸이 되살아나고, 차를 몰고, 그 차를 쫓아가는 것 외에 특별한 액션은 없다. 신체를 변화시키고, 재생하는 인공지능 로봇의 모습은 최근 컴퓨터 그래픽 기술력을 고려하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스토리라인. 주인공 카일 리스가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는 네 가지 "타임 라인이 뒤죽박죽돼" 있다. 각 시간대에 각각 다른 사건이 일어났고 과거, 현재, 미래가 짐작하기 어렵게 변해버렸다. 등장인물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객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려운 용어를 쏟아내는 '팝스'(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카일 리스는 말한다. "쉽게 말하게 하는 스위치는 없나." 이는 관객이 앨런 테일러 감독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간여행을 남발하다 보니 시간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돼버렸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두 번째 작품에서 끝났다. '배트맨' 시리즈가 '다크 나이트' 시리즈로 화려하게 부활했던 것처럼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 건 무리였나. 이제는 "아이 윌 비 백(I'll be back)"이라는 말조차 식상하다. 영화는 속편을 암시하며 끝난다. 글쎄, 터미네이터가 다시 돌아올 이유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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