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 300조원도 탕진… "공짜복지 좋아하다 이 지경까지"

입력 2015.07.01 03:00 | 수정 2015.07.01 11:13

[혼돈의 그리스] 디폴트 위기 그리스… 한경진 특파원 르포

- 그리스 국가부채 400조원
지난 5년 300조원 달하는 채권단 구제금융도 허사

- 긴축안 반대 국민
"채권단을 쓰러뜨리고 다시 시작하자"

- 긴축안 찬성 국민
"유로존 탈퇴 원치 않아…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경진 특파원 사진
한경진 특파원
◇국민투표에 운명을 건 그리스

29일 오후 해가 저물 무렵 신타그마광장 앞에는 1만3000여명에 달하는 사람이 몰려들었다. '우리의 인생은 채권단에 달린 것이 아니다!' '더는 채권단의 말을 듣지 말고, 그들을 쓰러뜨리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이들이 든 현수막엔 분노의 글귀가 가득했다.

'루저(패배자)'라고 적힌 낡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 수백 유로가 넘는 '돌체앤가바나' 선글라스를 쓴 여성, 흰 머리의 노인이 함께 "오히(Oxi·아니요)"를 반복해서 외쳤다. 오는 5일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 최종 협상안에 대한 찬반(贊反)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대파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파파요아누(30)씨는 "평생 빚만 갚다가 죽을 수는 없다"며 "친구들과 함께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2년 반 전부터 무직 상태"라며 "생활비는 부모님에게서 받아 쓴다"고 말했다.

“채권단 구제금융안 반대” 시위 - 29일 그리스 아테네 거리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위 군중이 ‘아니요(반대)’라는 뜻의 그리스어 ‘OXI’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그리스는 오는 5일 국제 채권단의 협상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채권단 구제금융안 반대” 시위 - 29일 그리스 아테네 거리에서 국제 채권단의 구제금융안에 반대하는 수천 명의 시위 군중이 ‘아니요(반대)’라는 뜻의 그리스어 ‘OXI’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그리스는 오는 5일 국제 채권단의 협상안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다. /Getty Images 멀티비츠
치프라스 총리는 공영방송에 나와 "협상안에 대한 반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리스의 입지도 강해진다"며 반대 투표를 독려했다. 만약 투표가 가결되면 정권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그는 투표를 부결시키면 채권단을 압박해 부채 탕감 등 더 좋은 조건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만약 개혁안 찬성표가 더 많아 물러나게 된다 해도 '채권단에 맞선 지도자'라는 정치적 자산을 남길 수 있다.

반면 알파와 ANT1 등 주요 민영방송에 나온 경제 전문가들은 주로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해 그리스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일 저녁엔 국민투표 찬성 세력이 집회를 연다. 아테네국제공항에서 만난 교사 슈네츠(31)씨는 "지금 사회 전체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벼랑 끝으로 내달리는 것 같다"며 "우리는 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400조원 빚더미에 파산하는 그리스

많은 연금 생활자들은 당장 한 푼의 돈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틀간 수십명의 연금 생활자가 굳게 닫힌 그리스 중앙은행 지점 앞으로 나와 발을 동동 굴렀다. 데모스(67)씨는 "현금을 뽑을 수 있는 신용카드가 없어서 당장 굶게 생겼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걸인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신타그마 전철역 근처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동전 한 닢을 흔쾌히 던져주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무료로 전철을 타던 한 승객은 "공짜 좋아하다 이렇게 망했는데…"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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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부채 16억유로를 상환하지 못하면 그리스는 파산 선고를 받게 된다. IMF 회계상으로는 '체납'으로 분류하지만 시장에선 실질적으로 디폴트 선언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 사실 이 돈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스 중앙정부의 총부채는 약 3200억유로(약 400조원), 그리스 GDP(국내총생산)의 177%에 달한다.

구제금융을 받고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이 돈을 갚을 방법은 없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그리스에 유동성 지원을 할 수도 없다. ECB는 1일 통화정책위원회를 열어 유동성 지원 여부를 재검토할 계획이다.

그리스인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테살로니키 지역에 사는 의사 스탈리카스(50)씨는 "처음엔 치프라스의 주장에 공감했지만, 갈수록 미숙한 젊은 지도자가 더욱 위험한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디폴트(default)

국가나 기업의 부도, 개인의 파산처럼 부채를 갚을 때가 됐는데도 이자 지불이나 원금 상환이 불가능한 상태. 국가가 디폴트되면 ‘국가부도’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모라토리엄(moratorium)이 있는데, 이는 빚의 상환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1997년 외환 위기 때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반면 그리스가 IMF에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도 IMF가 민간 기관이 아니어서 디폴트가 아닌 ‘체납(arrears)’으로 처리하는데, 금융 시장에서는 이를 사실상의 디폴트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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