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病室문화 바꾸자] 情 때문에 우르르 病문안… 면회시간 어기고, 음식 먹으며 '왁자지껄'

입력 2015.06.16 03:00

[上] 집단감염 위험 키우는 '도떼기 市場'같은 병실

-규정 무시, 막무가내 문병
외부 음식 반입 금지해도 치킨 사오고 컵라면 끓여
알레르기 유발하는 꽃 반입, 애완견 데려가는 경우도 있어
환자와 같이 술 마시거나 병실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한국 특유의 문화
매정하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 病문안 가는 경우 많아

9일 오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어린이 병동 5층에는 양념치킨 냄새가 진동했다. 병문안을 온 어른 4명이 병상에 걸터앉아 치킨을 꺼내자 어린 환자는 신이 났다. 환자의 아버지 신모(37)씨는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아이의 성화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린이병원 면회 종료 시각인 오후 8시를 넘겼지만 문병객의 발길은 이어졌다. 2층 출입구를 폐쇄하는 10시 직전에야 20여명의 문병객이 우르르 병원을 빠져나왔다. 면회를 온 오모(61)씨는 "면회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리를 다쳐 입원한 손자를 어떻게 안 보고 가냐"고 말했다. 일반 병동 8층 오모(67)씨의 병상에선 즉석 계 모임이 열렸다. 6명의 계원이 병문안을 온 것이다. 이들은 병실 내 사용이 금지된 전기 포트로 물을 데워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수다를 이어갔다.

지난 1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병문안 온 한 가족과 환자가 병원 로비 밖에서 애완견을 쓰다듬고 있다(왼쪽). 지난주 인천 남동구의 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문안 온 친구와 함께 컵라면·떡볶이·닭강정 등 외부 음식을 들여와 먹고 있다(오른쪽).
지난 14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병문안 온 한 가족과 환자가 병원 로비 밖에서 애완견을 쓰다듬고 있다(왼쪽). 지난주 인천 남동구의 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병문안 온 친구와 함께 컵라면·떡볶이·닭강정 등 외부 음식을 들여와 먹고 있다(오른쪽). /오종찬 기자·인스타그램 캡처
병원은 질병을 치료하는 곳이고 병실은 환자의 회복을 위한 공간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서도, 질병의 외부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병실이란 공간은 '격리'가 원칙이다. 하지만 한국 병원의 병실 문지방은 낮았다.

이 대학병원은 면회 시간제한과 더불어 15세 이하 어린이 문병 금지, 알레르기 유발 물질 반입 금지 등 문병객이 지켜야 할 세부 지침을 갖고 있다. 하지만 문병객은 지침을 확인하거나 지키려 하지 않았고, 병원 측은 이를 방문객에게 알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 병원 보안 관계자는 외부 음식 반입은 애교 수준이라고 했다. 실제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꽃을 반입하려는 문병객도 있었다. 그는 "문병객이 애완견을 데리고 오기에 출입을 막자 '애완견용 가방에 넣었으니 된 것 아니냐'며 따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게임기를 대여해주는 업체 직원들이 병실에 들어와 영업할 때도 있다고 했다. 근처 노점 상인도 화장실을 찾아 매일같이 병원에 손쉽게 드나든다.

의료인 100명에게 '한국 병문안 무엇이 문제인가' 물었더니.
같은 날 다른 서울 마포구의 한 병원 병동에선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복막염 환자 A씨를 병문안 온 같은 교회 전도사와 신자들이었다. A씨는 "메르스로 난리통이니 오지 말아 달라고 해도 '그럴 수는 없다'며 끝내 병문안을 온 사람들"이라며 "내일은 다른 신자들이 문병 온다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병원 보안 담당자는 "정형외과 환자가 많은 병원이라 더욱 통제가 어렵다"고 했다. 환자나 병문안 온 사람들이 골절상은 감염과 무관한 것 아니냐며 병원 규칙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담당자는 "골절상 환자를 병문안 온 친구 2명이 소주를 사와 환자와 함께 마시기에 제지하고 5분 뒤 다시 와 보니 계속 마시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2인실에서 창문을 열고 몰래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문병객도 있었다"고 했다. 단순 골절상 환자를 면회 왔어도 병실에는 수술을 받고 면역력이 약해진 다른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안중에 없다.

병원 측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문병객 때문에 의료진은 골머리를 앓는다. 본지가 입원 병동이 있는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 100명을 대상으로 '한국 병문안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응답자들은 큰 소리로 떠드는 경우(19.7%), 술 마시고 방문하는 경우(18.7%), 여러 명이 한 번에 몰려오는 경우(15%), 문병객이 환자의 침상에 앉거나 눕는 경우(10%) 등을 꼽았다. 치료에 방해되는 건강보조식품을 사와 환자에게 먹이는 문병객도 있다고 했다.

문병객 중에는 정(情)에 이끌리거나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친척과 지인의 병문안을 가는 한국적인 문화 때문에 불가피하게 병실을 찾아가는 경우도 많다. 지난 10일 김모(35)씨는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시누이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는 한 대형병원을 찾았다. "돌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찜찜해 잠시 망설였더니 함께 간 시어머니 표정이 싸늘하게 바뀌었다"며 "결국 아이를 데리고 시누이 병문안을 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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