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나온 것 같았다. 9일 오후 2시 도쿄 도심 일본기자클럽에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91) 전 일본 총리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78) 전 관방장관이 들어섰다. 일본군위안부를 강제동원 했다고 인정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이다. 이념도, 정당도 다른 두 사람이 이 문제로 한자리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 시간 전부터 200석 회의실을 꽉 채우고 기다린 기자들 앞에서 두 원로가 아베 정권을 향해 돌직구를 던졌다. 구라시게 아쓰로(倉重篤郞)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이 사회자 겸 질문자로 나섰다.

한·일 갈등의 실타래를 풀어온 두 담화의 주인공 무라야마 도미이치(오른쪽) 전 총리와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이 9일 일본 기자클럽 회의실을 가득 메운 취재진 앞에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은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을 당부했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평가한다면.

고노=무라야마 담화는 전후 50년을 맞아 나왔다. 그때 일본은 자민당 정권이 무너지고 자민당·사민당·사키가케 3당 연립정권이 성립됐다. 과거 50년간 일본이 어떤 길을 걸어왔나 돌아보고, 앞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했다. 자민당 의원들도 다수가 공감했다. 무라야마 담화는 (무라야마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다수의 생각이 표출된 것이다. 전후 50주년에 이 담화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무라야마=(위안부 이슈가 처음 불거졌을 때) 한국은 '반드시 일본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모든 걸 해결했다'는 입장이었다. 이래선 서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 고노 담화가 나왔다. 일본 정부의 노력을 보여줬다. 유익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국민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요즘 '침략'에 대해 여러 이견이 있는데.

무라야마=일본군이 중국을 침략했던 것,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만주에 가서 만주국을 세운 것에 대해 침략 말고 다른 표현을 쓸 수 없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의견은.

고노=미야자와 정권(1991~93년) 때 한국의 요청으로 위안부 문제를 조사한 뒤 고노 담화를 냈다. 위안부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모집되고 관리됐다. 거짓말로 속여서 끌고 간 경우도 있고, 최근 아베 총리가 말한 것처럼 인신매매 당한 경우도 있다. 본인의 의사에 반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모집된 뒤에는 분명히 강제로 끌려갔다. 군이 준비한 운송수단을 타고 이동한 것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네덜란드 여성들이 끌려간 사건을 봐도, '강제동원 사실이 없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무라야마=작년에 한국 갔을 때,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이렇게 관심이 큰 줄 몰랐다. 중국에서도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일본만 잘 모른다. 모두가, 특히 한국이, 일본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런 걱정 하지 않게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책도 역시 일본이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책을 찾았으면 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관계에 진전이 없다. 한국도 일본이 전후 평화국가를 위해 노력한 점, 일본 경제가 발전해 한국과 중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베 담화, 어떤 내용이 돼야 할까.

무라야마=나는 과거에 대해 좋은 것은 좋았다고 인정하고, 나쁜 것은 나빴다고 사죄해야 한다는 결의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냈다. (아베 총리는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일본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까) 반복할 수 있다.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반드시 계승해야 한다.

이날 고노는 일본기자클럽 방명록에 '진실(眞實)'이라고 썼다. 그는 "우선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있었던 일을 없었던 척하면 안 된다"고 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사무사(思無邪)'라고 썼다. 논어의 한 귀절로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는 "고노 장관이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과 표현은 달라도 같은 의미"라고 했다. 일본 기자 한 명이 마이크를 잡더니 "실례지만, 두 분 같은 분이 다시 한 번 현역으로 돌아와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박수와 웃음이 터졌다.